제6편. 여물이의 여름방학
여물이와 아빠가 탄 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섰다. 오는 동안 여물이는 휴게소 안내판이 보일 때마다 오줌이 마렵다고 칭얼댔다. 아직 목적지에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벌써 두 번째 휴게소다. 그동안 아빠는 여물이와 둘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었다. 대게는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었다. 오늘처럼 엄마 없이 네 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길은 처음이다.
화장실에서 막 나왔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2주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아빠는 여물이를 데리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안 된다고 했다. 내년이면 학교에 가야 하는데 방학 내내 놀기만 할 거냐며 반대했다. 매일매일 책도 읽어줘야 하고 봐야 할 영어 dvd가 잔뜩 쌓였다고 했다. 엄마는 여물이가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을 냈다. 이 일로 아침에 엄마와 아빠가 다퉜다.
“엄마, 아빠가 나 납치했어.”
아빠의 눈이 동그래졌다.
“야, 너도 할아버지 댁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아빠는 엄마가 출근하자 여물이 옷만 가방 한가득 챙겨 집을 나선 것이다. 여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와 통화를 계속했다.
“응, 여기 휴게소야. 응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아빠에게 넘겼다.
“주말에 엄마도 오겠데.”
엄마와 통화를 해서인지 여물이는 그 후 고속도로가 끝날 때까지 내내 잠을 잤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여물이가 차에서 내려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여기는 아빠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물이가 갓난아기였을 무렵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도 새로 짓고, 밭도 마련해서 다시 옛날처럼 농부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냉장고에서 커다란 수박을 꺼내 왔다. 자기 머리보다 두 배는 큰 수박을 보며 여물이가 소리쳤다.
“와아!”
빨갛게 익은 수박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뜨거운 햇볕이 한결 누그러졌다. 아빠는 여물이를 데리고 뒷동산으로 갔다. 소나무 몇 그루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무덤 두 개가 보였다. 아빠와 여물이는 무덤 앞에 나란히 섰다.
“절은 두 번 하는 거야. 알았지?”
“근데, 누구 무덤인데?”
“아빠의 할아버지 할머니. 네 할아버지 할머니 말고.”
“나도 알아.”
“뭘 아는데?”
“내가 커서 아기 낳으면 아빠도 할아버지 되는 거잖아.”
아빠는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물이는 엉덩이를 높이 들고 두 번 절을 했다.
다음날, 식구들은 모두 밭으로 갔다. 밭에는 수박, 참외, 땅콩, 도라지, 토란, 감자 등 먹을 것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커다랗게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수박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 오늘도 수박 먹는 거죠?”
“응, 맘껏 먹고 서울 갈 때 다 따 가지고 가.”
“와! 신난다.”
여물이는 수박덩이를 품에 안고 좋아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밭 가운데 한참 자라고 있는 풀을 뽑았고, 아빠는 밭 가장자리를 덮고 있는 칡넝쿨을 낫으로 걷어냈다. 여물이가 풀밭을 헤집고 다닐 때마다 메뚜기, 방아깨비 등 수많은 벌레들이 이리저리 날았다. 어른 손가락만 한 메뚜기도 보였다. 여물이가 메뚜기를 잡으려 뛰었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다들 잘도 도망을 갔다.
“잡았다.”
한 남자아이가 덥석 메뚜기를 낚아챘다. 여물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메뚜기 머리와 몸통 사이를 벌리더니 강아지풀대를 꽂아 넣었다. 이미 풀대에는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빼곡히 꽂혔다. 때가 전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아이. 얼굴이며 팔다리는 햇볕에 타 새까맣다. 아이는 여물이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 누구야?”
“은여물”
“우리 동네 살아?”
“서울.”
“이거 먹을래?”
아이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여물이는 한걸음 물러났다. 아이는 뒤돌아 어딘가로 갔다. 길모퉁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잔나무가지를 가져다 꺼져가는 불 위에 올렸다. 불이 다시 살아났다. 불 속에다 메뚜기와 방아깨비 꿰미를 던져 넣었다. 언뜻 봐도 열 마리는 넘어 보였다. 날개와 다리가 금세 타 없어졌다. 어느 것이 메뚜기인지 방아깨비인지 모르게 새까매졌다. 구수한 냄새가 났다.
여물이도 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이는 불에서 익은 것을 꺼내 땅바닥에 던졌다. 까만 것들이 대충 떨어져 나가자 풀대에서 한 개를 뽑았다. 여물이에게 건넸다. 여물이는 받기는 했지만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아이는 한 개를 뽑아서 이번에는 제 입에 넣고 씹었다. 맛이 좋은지 입가가 올라갔다. 또 한 개를 뽑아 먹으며 여물이를 봤다. 여물이는 손에 든 것을 둘로 나눴다. 겉은 까만데 안은 초록색으로 김이 났다. 한쪽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 씹었다. 눈이 동그래지는 맛이었다. 나머지도 입에 넣었다. 아이가 절반을 뽑아 여물이에게 주었다. 둘 모두 입이 새까매졌다.
“우리 산딸기 밭에 갈래?”
“응, 좋아.”
여물이와 아이는 신나게 논두렁 사이를 달렸다. 새파랗게 자란 벼 사이사이에서 어른들이 김을 매다 허리를 폈다. 벌써 허수아비를 세운 논도 있었다. 논길이 끝나고 개울을 건너자 산딸기 넝쿨이 지천에 깔린 밭이 나왔다.
양손으로 하나씩 산딸기를 따서 쉴 새 없이 입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입이 새빨개졌다.
“목말라.”
뙤약볕은 내리쬐고 여물이의 얼굴에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아이는 여물이를 데리고 개울가로 갔다. 빨간 이끼가 낀 웅덩이 가운데서 뽀글뽀글 물이 올라왔다.
“내가 하는 거 잘 봐.”
아이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웅덩이 가에 집더니, 입만 물에 담근 채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너도 해 봐.”
여물이도 아이가 하는 것처럼 엎드린 채 물을 마셨다. 샘물은 차고 달았다. 손으로 물을 떠서 세수도 했다. 아이는 여물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쪽에서 머리에 수건을 쓴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서구야. 네 할머니가 찾아. 얼른 집에 가봐.”
“왜요?”
“왜긴, 점심때가 한참 지났어. 밥 먹어야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가던 길을 갔다. 아이는 여물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자.”
둘은 왔던 논두렁을 달려 허수아비 곁을 지나 마을을 향해 뛰었다.
“그쪽 말고 여기로 가면 더 빨라.”
큰길을 돌아가려는 여물이를 말리며 아이는 대숲으로 난 지름길로 들어갔다. 여물이도 아이를 따라 대숲으로 들어갔다. 길은 작은 손수레가 한 대 지나갈만했다. 양쪽으로 대나무들이 빼곡히 하늘을 덮어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여물이는 왠지 겁이 났다. 앞서 가던 아이는 그런 여물이를 보고는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
“여기만 지나면 금방이야.”
“나, 무서워.”
“우리 할머니를 불러볼까? 할머니가 금방 우릴 데리러 올 거야.”
“응!”
여물이와 아이는 목청껏 할머니를 부르며 달렸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이!”
그런데 둘 앞에 나타난 것은 할머니가 아닌 여우였다. 여우는 왠지 화가 난 얼굴로 이를 드러내며 대숲 사이에서 몸을 내밀었다.
“누가 시끄럽게 잠을 깨우는 거냐.”
여물이와 아이는 발이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여우는 캥캥 헛기침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아이들 주위를 돌았다.
“내가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했지?”
아이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며 말했다.
“난 들은 적 없는데. 여기 처음이야.”
“정말? 너 아냐?”
“나 아냐. 다른 애들이겠지.”
여우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여물이를 봤다. 여물이는 지레 먼저 말했다.
“나도 아냐. 난 서울에서 왔어.”
“뭐? 서울에서 왔다고?”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우리집에 가서 서울 얘기 좀 해줘. 응?”
여우는 여물이에게 바짝 다가가서 코를 들이대며 서울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좋아. 대신에 내가 하는 말 따라 해 봐. 서울 사람들은 누구나 하는 거야.”
“뭔데?”
여물이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여우는 눈을 끔벅끔벅거렸다.
“다, 다시 해 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여물이는 얼른 다시 해줬다. 그래도 여우는 입을 더듬거릴 뿐 따라 하지 못했다.
“내가 해볼게.”
아이가 여우를 놀리기라도 하듯 금방 외워서 따라 불렀다. 여우는 자리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으며 노래를 따라 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여물이가 조용히 아이의 팔뚝을 끌었다. 대숲 길을 지나며 신나게 노래를 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나라라. 나라라. 높이 높이 나라라. 우리 비행기.”
대숲 길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우는 그제야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코, 내가 속았구나. 거기 서지 못해!”
여우가 달려왔다. 여물이와 아이는 마을을 향해 뛰었다. 여우는 금세 가까워졌다.
“퍽!”
어디서 날아온 돌멩이가 여우의 한쪽 눈을 정통으로 맞췄다.
“깨갱!”
여우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부지깽이를 든 할머니가 달려왔다. 정신을 차린 여우가 할머니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부지깽이가 먼저 여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여우는 아픔에 몸부림치며 왔던 길을 달려 도망쳤다. 도망치는 여우를 향해 할머니가 소리쳤다.
“너, 이놈! 또 마을에 나타나면 네 새끼들 모두 잡아갈 테다. 너럭바위 아래 사는 거 내 다 알지!”
여우가 사라지자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갔다. 여물이와 아이는 할머니 품에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달랬다.
“그려, 그려, 무서웠지. 인제 괜찮다. 괜찮여.”
그래도 좀처럼 울음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게 왜 큰길 놔두고 이짝으로 와.”
할머니는 아이를 품에서 떼며 말했다. 그러다 여물이를 봤다. 둘 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됐다.
“근디, 너는 누구냐?”
“할머니, 내 친구야.”
할머니는 머리에서 수건을 풀어 여물이와 아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배고프겠다. 얼른 집에 가자.”
할머니는 한 손씩 손을 잡고 마을로 향했다.
여물이의 눈에 골목이 왠지 낯이 익었다.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과 같아 보였다. 다른 것은 골목 양쪽의 집들이었다. 할아버지네 집과 다른 집들은 모두 새집인데 여기 집들은 낡았다.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풀이 자란 곳도 있고, 담벼락이 무너진 곳도 있었다. 그리고 담에는 깨진 유리병을 꽂아 놓았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섰다. 외양간 안에 커다란 황소 두 마리가 눈을 끔벅거렸다.
“저기 가서 앉아라.”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은 감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이었다. 여물이와 아이는 얼른 가서 앉았다. 할머니가 대소쿠리 가득 삶은 옥수수를 내왔다. 할머니는 옥수수 껍질을 까서 하나씩 손에 쥐어줬다. 한 입 가득 옥수수를 베어 물었다. 여물이는 허겁지겁 옥수수 알을 발라 먹었다. 그런 여물이를 가만히 쳐다보던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옥수수를 세 개째 먹을 때쯤에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이를 불렀다.
“아야 서구야.”
“응?”
할머니는 여물이를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이 애 어디서 만났어?”
“저기 밭에 가는 길에서.”
이번에는 여물이에게 물었다.
“너는 집이 어디여?”
“할아버지 댁에 왔어요. 아빠랑 같이. 아차!”
여물이는 뭔가 정신을 차린 듯 먹던 옥수수를 입에서 뗐다.
“아빠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수박밭에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 다 잡고 물어봐도 너를 모르던디.”
여물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빠한테 갈래요.”
“내가 데려다줄게. 어딘지 알아.”
“그려, 서구 니가 얼른 데려다주고 와. 어른들이 걱정하셔.”
아이는 여물이의 손을 잡고 집을 달려 나갔다. 할머니가 외쳤다.
“큰길로 가.”
“네!”
마을 뒷길을 둘이 힘차게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어디 만큼 달리자 메뚜기를 구워 먹었던 길모퉁이가 나왔다.
“여물아!”
저만치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아!”
여물이는 아이의 손을 놓고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 품에 안겼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응, 쟤랑 놀았어.”
여물이는 길모퉁이에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여물이와 아빠를 보더니 뒤돌아서 왔던 길을 뛰어갔다. 굽은 길을 돌아 금세 사라졌다.
“쟨 누구야?”
“응? 서구. 이름이 서구라고 했어.”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야, 그건 아빠 이름이잖아.”
여물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빠는 여물이 손을 잡아끌었다.
“얼른 가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다리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수레 가득 수박을 실었다. 여물이는 가득 실린 수박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이는 터벅터벅 골목길을 걸어 내려왔다. 집으로 들어서자, 소가 음머- 하고 울었다. 평상에 가서 앉았다. 소쿠리 옆에 여물이가 먹다 남긴 옥수수자루가 보였다. 왠지 눈가가 불거졌다. 할머니가 다가와 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는 제 가슴에 손바닥을 대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여기에 바람이 쉭쉭 지나가는 거 같아요.”
할머니는 그런 손자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여. 우리 서구가 크면 꼭 다시 만나게 될거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