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글이 놓인 슬픈 현실
우리말과 글은 슬프지만 우리 것이 아닌 게 많습니다. 보고서, 신문과 같은 실제 생활에서 쓰는 글에 꽤 많은 부분이 가짜 일본어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지배하는 말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어까지 뒤범벅이 되어 우리말과 글은 흙탕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근대 시기에 우리말과 글은 새로운 세상을 담아줄 그릇이 부족했습니다. 세상은 새로워졌으나 이것을 받아줄 한글 어휘가 부족했습니다. 근대 혼란기에 일제 침입이 시작되었지요. 일제는 우리 민족을 영원히 지배하려고 일본어를 가져왔습니다. 그 뒤 일본은 패망했지만 낡아빠진 일본어는 이 땅에 남아 우리 언어 습관과 생각을 오염시켰습니다. 일본어가 암 덩어리처럼 디엔에이(DNA)를 변질시켰습니다. 이 땅에 지식인들은 정치, 교육, 문화, 예술을 비롯한 사회 모든 방면에서 새로운 우리말과 글을 새로 발굴하기보다는 남겨진 일본어를 털도 뽑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이름표만 일본어에서 우리말로 바뀌었습니다. 보기를 들면 국민 생활과 밀접과 연관이 있는 민법은 일본 민법과 비교하면 껍데기가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복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헌법조차 일본 헌법 구조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민낯을 알기 어렵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우리말이 아직도 일본어를 베껴 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복 후 바로잡았다면 좋으련만 벌써 몇 세대가 지나기에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모국어를 살리려면 종양을 도려내는 수술은 아니더라도 약물 치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과 글 다듬기(국어 순화)는 오염된 말과 글을 올바르게 고친다고 이름표를 달 수 있습니다. 국어 순화에는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한자어로 고치기도 포함합니다. 국어를 순화한다는 핑계로 한자어를 억지로 고유어(토박이말)로 대체하면 오히려 낯선 말이 됩니다. 하천(下川)이 아닌 가람[川]을 쓰더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특정 사람만 아는 언어가 되어 버립니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셈이죠. 더욱이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말 어휘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빼면 다양하게 표현이 어렵습니다.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들 때는 많은 어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복잡해진 세상에서는 고유어만으로 표현하기가 부족하므로 쉬운 한자어로 고치는 것도 울며 양파 먹기 식으로 국어 순화에 포함시킵니다.
국어 순화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자어 고치기, 일본어 번역 투 고치기, 외래어 고치기가 있습니다. 고유어를 파고들면 비어, 속어, 은어 고치기가 있습니다. 문법으로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이 있지요. 여기서는 한자어 고치기와 일본 문법을 수반하는 일본어 투 고치기를 위주로 풀이하겠습니다. 나머지 외래어 고치기는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를 활용하고, 주석 1)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과 외래어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범 참고하시어 올바른 우리말과 글로 고치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주석 2)
그럼 왜 국어 순화가 안 되었을까?
첫째 명사 고치기에 편식을 하였습니다. 한자어 명사를 고유어 명사로 고치는 데만 열을 올렸습니다. 고수부지는 둔치마당, 나대지는 빈집 터, 대두유는 콩기름 따위로 변경하였습니다. 일본어 투도 다마네기를 양파로, 오뎅을 어묵으로 바꾸는 데만 몰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은 명사가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말다운 어미와 조사와 용언과 부사를 써먹어야 합니다. 좀 더 설명하면 어미 '하다'가 생략된 동사성 한자어 명사는 용언과 어미로 활용하여 고쳐야 합니다. 일반 한자어 명사(하다가 붙지 않는 한자어 명사)는 조사 따위를 활용하여 바꾸어야 합니다.
둘째 풍부한 어휘를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고유어와 한자어는 일 대 일의 관계가 아닌 일 대 다수 관계로 존재합니다. 보기를 들면 고치다, 교정하다, 수선하다, 치료하다를 잣대로 대어 보시지요. 한자어인 교정하다, 수선하다, 치료하다 따위는 모두 고유어인 '고치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치다'는 특정 조건에서만 구현됩니다. 오타가 오면 교정하다로, 옷이 오면 수선하다로, 병이 오면 치료하다가 어울립니다.
고치는 방향은 먼저 고유어를 찾고 다음은 쉬운 한자어를 써야 합니다. 위 문장에서 오타와 관련해서는 손보다, 바로잡다, 손질하다 따위와 같은 고유어를 발굴하고 그래도 안 되면 수정하다와 같은 그나마 쉬운 한자어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고유어가 없다면 쉬운 한자어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보기를 들면 시작, 개시, 발족, 출발, 출범 따위의 한자어에서 발족, 출범을 쓰기보다는 그나마 쉬운 한자어인 시작이나 출발 따위를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고유어 부사가 지닌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과 글은 살아있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어항과 같은 한자어 부사로 갇히게 만들면 물고기는 죽어버립니다. 흐르는 강물과 같은 고유어 부사를 잘 써야 글이 살아납니다.
제대로 된 치료를 하기 전에 대형마트에서 시식하듯 고친 사례를 잠깐 살펴보시지요. 우리 민법과 일본 민법과 강현철· 곽관훈 님이 교정한 예를 들어 비교해 보았습니다.
① 문장 전체를 고친 사례
- 민법 18조 1항: 생활의 근거되는 곳을 주소로 한다.
- 일본 민법 22조 1항: 各人の生活の本拠をその者の住所とする。
- 강형철·곽관훈: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을 주소로 한다.
- 글쓴이: 사람이 사는 곳을 주소로 한다.
② 일본어 투 후치사 상당구를 우리말 조사(대로)로 고친 사례
- 민법 2조 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쫓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 일본 민법 1조 2항: 権利の行使及び義務の履行は、信義に従い誠実に行わなければならない。
- 강형철·곽관훈: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따라 성실히 하여야 한다.
- 글쓴이: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대로 성실히 지켜야 한다.
③ 일본어 투 형식 명사를 우리말다운 어미(하려면)로 고친 사례
- 민법 5조 1항: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 일본 민법 5조 1항: 未成年者が法律行為をするには、その法定代理人の同意を得なければならない。
- 강형철·곽관훈: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 글쓴이: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려면 법정대리인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럼 풀이를 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 일본어를 직역하였으나 실제 주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중심이 된 주어로 고칩니다. 두 번째 문장에서 에 쫓다, 에 따르다 따위는 모두 일본어 투 후치사 상당구 이므로 우리말 대로로 고칩니다. 세 번째 문장에서 민법은 일본어 구 형태인 함에는 [には]을 직역하였고, 강형철과 곽관훈 님은 일본어 투 형식 명사 경우[場合]로 변경하였으나, '하려면'과 같은 조건의 어미가 잘 어울립니다.
지금까지를 요약해본다면 한자어를 바탕으로 삼는 일본어 투는 생각을 추상화해줄 뿐입니다. 추상화를 하려면 배경 설명이 되어야 하고, 읽는 이가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뇌 에너지 소비를 합니다. 읽는 이에게 뇌 소비를 시키시지 마시고 글쓴이가 읽는 이에게 머릿속에 그려 주십시오. 우리말과 글을 뇌 속에 고인 게 아니라 움직이어야 합니다. 고인 물을 썩게 마련입니다.
주석 1) 국립국어원, “우리말 다듬기,” 2021년 10월 4일 확인, https://www.korean.go.kr/front/imprv/refineList.do?mn_id=158.
주석 2)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 규범,” 2021년 10월 4일 확인, https://kornorms.korean.go.kr/main/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