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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린
by litergrapher Feb 27. 2017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역사가 진보하는 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차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우리나라의 모습은 새로운 젊은 세대의 그것과 일치할 수 있을까.


 박사모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항상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그런 사람들은 대충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이들이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에 순진한 오류가 있다는 걸 알려준 계기기도 했다. 특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정은에게 나라를 팔아먹을 것이라는 과장된 공포감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이념적 한계였고, 태극기 집회에 가면 진짜 돈을 주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돈 몇 만 원 따위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었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사람은 젊은 시절 경험했던 세상을 기준으로 세계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새삼 통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태극 기고 네가 촛불인 것처럼 나도 젊은 시절 집안 어른들한테 대들다가 신발로 얻어맞은 적이 있다."라고 하시는 대목에서 사람의 생각은 시대가 변화하면 그 상대적 위치가 바뀔 수도 있구나, 비교적 젊은 세대인 내 신념이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게 되면 '철없던 시절의 객기'로 반추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는 이미 만들어진 사회 질서가 불합리한 것 같고 나이 든 이들이 하는 얘기들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그들에 대한 공감은 아마 그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해 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바쳐 성실히 일했고 개인의 노력이 나라의 발전의 밑거름이라 믿었던 사람들이다. 전쟁으로 힘든 유년기를 거치고 샛별을 보며 일어나 하루 종일 일하며 아끼고 노력한 결과가 자신과 사회에 열매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박정희식 개발 독재의 구호 아래 살아온 그들에게 그들 시대의 가치를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다. 수 십 년 간 옳다고 믿었던 가치가 무너지는 순간 그들을 지탱해 왔던 역사의 의미도 소멸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체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이 방향이 맞다고 뛰어가는 분위기에 휩쓸려 갔던 대다수의 사람들을 비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박근혜가 탄핵될 경우, 노년층에서 분신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가 표출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븅신'같은 '꼴통보수'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했던 산업화와 안보, 국가번영의 역사를 부정하는 결론에 대한 반발 때문일 수 있다. 물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것이 구시대 청산의 필연적 부산물이라 얘기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볼 순 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60대나 70대가 되었을 때, 우리 또래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우리나라의 모습은 새로운 젊은 세대의 그것과 일치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것을 확신할 자신이 없다. 지금은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아닐 수도 있고, 이 생각을 끝까지 유지한다 해도 새 시대에 이르러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항상 옳아.'라는 독선적인 자세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와 대척점을 가진 세대와 집단도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한 모든 시대에 공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들이고, 악마의 탈을 쓴 특수한 사람들이 아닌 나보다 먼저 또는 나중에 이 사회를 살아간(갈) 나의 가족, 친척, 이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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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작 30대 직장인
낮엔 일하고, 밤엔 글을 씁니다.
주변에서 보고들은 것에 대한 생각을 끄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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