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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y 24. 2017

멍멍이, 착하지

그렇게 말없이 쓰다듬을 수 있는 등허리를 내어줄 뿐이다.


(ep.2에서 이어짐)


 집 근처 <구암공원>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정모’가 열린다. 주변 지역에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공원에 개를 풀어놓으면, 개들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린다. 종류도 작게는 치와와와 닥스훈트부터 웰시코기, 푸들, 시바, 골든 레트리버, 그레이하운드와 사모예드까지 다양하다. 아내와 나는 가끔 산책을 하며 강아지를 보러 공원에 나간다. 비록 주인이 싫어할지 몰라서 품에 안아보면서 놀지는 못하지만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함을 느낀다.


 “국민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 닥스훈트 새끼 한 마리 받아서 집에 갖고 왔다가 나도 엄마한테 혼나서 돌려준 적 있었어.”


라며 아내가 옛 추억을 고백한다.

 

 여기서 우리만 강아지 없어... 우리 아직 강아지 키우면 안 되겠지?


 이제 더 이상 강아지를 싫어하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는 않지만 몇 년 전 TV에서 본 프로그램 때문에 선뜻 강아지를 키울 수는 없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불안감을 느끼는 개가 온 집안을 헝클어뜨리며 이상 증세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맞벌이를 하는 동안에는 개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개는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질 것이 아니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에 우리 부부는 동의하는 바이다.


 또 한 가지, 개를 키울 여건이 되면, 강아지를 분양받거나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입양하기로 했다. 가끔 일요일 아침에 <TV 동물농장>을 보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버려진 개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절룩대는 다리로 휴게소 휴지통을 뒤적이는 모습이 너무 슬프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이왕 반려견을 키우려면 사랑이 절실한 멍멍이를 가족으로 받아 보듬어주고 돌봐 주기로 약속했다. 아마 적어도 20년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구암공원>에 정모가 없는 날이면,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강아지들을 만난다. 특히 일본에서 시바를 키우는 몇 사람을 팔로우하면서 그들이 올리는 강아지들의 모습을 보며 혼자 좋아라한다. 처음에는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는데, 점점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강아지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힐링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최근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많이 느꼈다. 삶이 단조롭고,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보니 원인 모를 회의감을 많이 쌓아놓고 있었다. 때로는 위로받고 싶은데, 무얼 위로받고 싶은지 잘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털어놓으면 왠지 시답지 않은 조언이나 할 것 같아서 그냥 언어화되지 않은 고민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터였다. 그럴 때마다 인스타그램 속 멍멍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씩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엄마에게 혼나고 골목 어귀에 엎드려 있는 촐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훌쩍이던 유년 시절, 군견 발리와 함께 계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삭이던 이등병 시절, 그렇게 멍멍이들과 함께 있으면 어느새 마음속에 담아둔 서운한 감정들이 서서히 침잠하곤 했다. 강아지들은 뭔가 알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고, 주인이 시무룩해 있으면 옆에 엎드리고 앉아 가만히 쓰다듬을 수 있는 등허리를 내어줄 뿐이었다. 그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별 불평도 하지 않은 채, 항상 그렇게 있어주었다.



 거의 매일 들르는, ‘the_shiba_mogu’라는 이름의 황색 시바견 인스타 계정이 있다. 사진과 동영상 속 Mogu는 항상 주인집 아기와 함께 등장하는데, 날 때부터 함께 자라서 그런지 놀랍게도 이 둘은 서로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앞으로 이 둘의 성장 과정이 굉장히 기대된다. 아기는 머지않아 인간의 말을 습득하고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반려견 Mogu와 함께 한 성장과정이 분명 타인에 대한 정서적 유대와 EQ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걸 보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를 키우는 게 확실히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는 좋을 것 같지 않아? 우리도 그냥 지금부터 키워볼까?”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근데 그전에 사람이나 먼저 만들어서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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