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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린
by litergrapher Feb 16. 2017

'조율이시'가 뭣이 중헌디

누구를 위하여 향은 타오르나.


"아, 제사상에 음식 놓는 법은 성리학 책에도 없다는데..."


 장손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제사 지내는 게 싫었다. 아직도 가끔 할머니가 웃자고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게 있다. 내가 예닐곱 살쯤 되었을 때라는데, 어느 제삿날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있지도 않은데 왜 음식 앞에서 절 하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서른이 넘은 지금도 제사는 내가 썩 좋아하는 행사는 아니다. 물론 순기능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돌아가신 고인을 기리며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주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필요 이상으로 공수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일임은 분명하다.


 난 아직 제사상에 음식 놓는 법과 축문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 제사의 절차도 잘 모른다. 그냥 아버지 눈치를 보며 다 같이 절 하자면 하고, 잔을 내리라면 내리고 올리라면 올릴 뿐이다. 이런 장손 조카가 걱정스러웠는지 작은 아버지는 상을 차릴 때 항상 불러서 놔보라고 하신다. 물론 늘 틀리긴 하지만.


 그저께 할아버지 제사가 있었다. 이 번에도 과일 놓는 순서를 틀려 한 소리 듣던 차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아, 제사상에 음식 놓는 법은 성리학 책에도 없다는데..."


"제사의 법도는 조율이시, 어동육서..."





 시간을 돌려, 제사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던 때를 상상해 보았다. 어림잡아 조선 초기 정도 되었을 테고, 최소한 양반은 되어야 과일과 곡식, 고기와 어류 등 다양한 찬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 집안마다 원하는 것을 올리다 보면, 공급량이 수요보다 적은 식재료들은 구하기 어려웠겠지.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상에 올라오는 특별식(대부분 벼농사를 짓던 시절이었으니)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 양반들 나름대로 제사 음식에 대한 프로토콜을 도입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표준화된 음식들을 배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누군가 고안했을 것이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생산성이 증대되어 여염집에서도 제사를 모시는 게 가능해지면서 '양반 흉내내기 좋은 제사 법도'로 굳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100% 내 머리 속의 사고 실험이다.)


 게다가 유학이든 기독교든 불교든 들어오기만 하면 상당 부분 교조화 되는 한국인의 특성상, 제사 절차 역시 하나의 절대적 권위를 갖는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뭐든 신을 섬기는 방식이 자신들과 다르면 이단으로 몰아붙이곤 하는 몇몇 한국의 신도들처럼.




얼마 전, 설 연휴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글.


"정작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로 나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들만 음식 앞에 절하고 집에 돌아와 마누라랑 싸운다."

 물론 조상의 덕을 입었든 입지 못했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끔씩 생각해 보는 것은 맞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이런 문화는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소개한 촌철살인의 말이 뼈저리게 많이 와 닿는다.


 또 한 번 과거의 삶을 생각해 보자.


 옛날 마을은 거의 집성촌이었다.

 큰 아들은 부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모시고 살고, 작은 아들은 분가하여 근처에 살며, 시간이 지나면 먼 친척이 이웃이 되는 그런 형태의 마을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집에서 제사가 있든 자신의 뿌리와 연결된 조상의 제사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찾아 일을 도왔을 것이다. 또한 밥 외에 타 고장에서 생산된 특식을 먹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제사는 일종의 마을 축제와 같은 기능도 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북과 장구는 없었겠지만 이런 분위기 아니었을까.


'자(子) 시'쯤 돌아와 해 뜰 때'쯤' 밭에 나가도 되는 것이 아닌, 그다음 날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는 삶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형제만 되어도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고, 큰 집 제사에는 사촌들조차 모두 모이기 힘들다. 구하기 어려워서 못 먹는 음식은 없고,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한 식경', '두 식경'처럼 느슨한 시간대가 아닌 분 단위, 초 단위로 세분화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즉, '해(亥) 시'나 '자(子) 시'쯤 제사를 지내고 해 뜰 때 '쯤' 밭에 나가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얼른 설거지하고 집에 돌아와 자고 그다음 날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는 삶인 것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있고.


 또한 각종 서양 종교의 유입과 해외 문화의 잦은 접촉은 지난 수 십 년 간 전통적인 '조상 모시기 체계'에 도전해왔다. 이러 말미암은 젊은 세대의 의식 변화까지 가세해 아마 몇몇 종갓집을 제외하면 이런 제사 의식은 몇십 년 안에 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내다보게 된다.





급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는 것이 아닌 저항을 서서히 줄여가는 과정


 이렇게 쓰고나니 어차피 사라질 것, 지금이라도 당장 없애버리자는 말로 결론을 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만은 않나보다. 설령 몇 대 지나지 않아 제사라는 전통이 완전히 사라져 나는 귀신이 되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할 망정,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나더러 하루아침에 없애라면 그건 또 망설여질 일이다.

 꽤나 유난스럽게 정도(正道)를 고집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사실 우리 집도 부모님의 주도 하에 조금씩 제사의 수나 절차를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어머니의 투쟁의지와 아버지의 수용에 대해 감사드린다 덕분에 아마 이런 방식으로 내 대에는 더 간소해질 것이고, 내 다음 대에 다시 부담을 줄여나가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점점 바뀌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시대를 골라 태어날 수 있는 선택권이 없고, 우연히 나는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탈근대 시기에 나고 자랐다. 어쨌거나 내가 태어나기 이 전에 이미 존재하던 많은 것들이 어떤 필연적인 이유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저 나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 그중 몇몇이 퇴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조율이시 어동육서' 같은 고리타분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갑자기 급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바꿔나가며 서서히 저항을 줄여 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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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작 30대 직장인
낮엔 일하고, 밤엔 글을 씁니다.
주변에서 보고들은 것에 대한 생각을 끄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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