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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편린
by litergrapher Feb 18. 2017

삶의 마지막 순간

임종의 순간에라도 부끄러워 하라.


난 이제 여한이 없다.

 백선엽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이등병 때였다. 군대에는 장병들의 교양을 위한 '진중문고' 외에도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킬 목적의 책들도 가끔 보급되었는데,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백선엽 장군의 활약을 비중있게 소개한 만화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표지를 가득 채운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조국을 위한 충정으로 가득차 있는 듯 했고, 곳곳에 드러난 삽화들에서 나타난 빛나는 그의 전술과 리더십은 마치 전쟁의 신을 묘사하는 듯 하였다. 아마도 '이런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가 꽃 피울 수 있었다.' 대충 그런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적어도 그 땐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 만화만 가지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성급했던 것이었을까. 전역 후 찾아본 그에 대한 정보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간도특설대.

 즉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독립군들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던 그의 이력. 그는 해방 전 일본의 편에서 동족을 잡아들이던 반민족행위자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불안정한 해방정국은 야속하게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채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쉽게 마련해 주었고, 그는 남로당 빨치산 토벌을 통해 국군으로 다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 기회를 잡아 공을 세우고 불과 서른 세 살에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2011년, KBS에서 6.25 특집으로 <전쟁과 군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아이러니 하게도 백선엽을 다시 영웅화 하는 내용으로 구성하였고, 그는 감격스런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하면서 "이제 여한이 없다."라며 자신의 삶에 대해 회한이 없는 듯한 소회를 밝혔다.

 6년이 흘러 98세가 된 그는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있다. 천수를 누린 셈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인생을 회고하며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날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반성할까. 아니면 자신은 평생 자유 대한민국에 헌신한 충직한 군인이었다며 떳떳한 표정으로 눈을 감을까.



 전두환 같은 이는 또 어떤가. 수 많은 국민을 살상하고도 평안한 말년을 보내다 임종이 다가오면 자신의 모든 행위는 조국을 위한 일이었다며 자위하며 숨을 거둘까. 또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만 김기춘 같은 이들은 어떨까. 자신은 평생 헌신을 다한 공직자였다고 회고할까.






당신은 어쩌다 과오를 숨길 찬스를 잡았을 뿐이다.

 요즘 well-dying이라는 말이 뜨면서, 잘 죽는 방법에 대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특히 <사람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25가지>처럼 말년의 감정을 서술한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걸 보면, 사람의 인생은 죽는 순간의 회고, 즉 자신의 지난 인생을 바라보며 느끼는 하나의 감정 덩어리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삶에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죽기 전에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비난과 질책을 당하고, 역사와 민족 앞에 한 번은 사죄한 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년, 300년 후 내려진 역사의 평가는 너무 늦다. 백선엽 당신의 삶은 절대 정의롭지 않았다고, 단지 역사의 흐름이 당신에게 관대했을 뿐, 당신은 한낱 기회주의자이며 민족의식이 없는 반역자였다고 똑똑히 들어야 한다.


 "이완용과 당신이 다른 점은 당신은 어쩌다 과오를 숨길 찬스를 잡았을 뿐이고 그는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민족적 양심을 개인의 출세보다 아래에 두었다는 점에서 그와 당신은 근본적으로 같다. 동포의 손에 잡혀 젊은 나이에 피눈물 흘리며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을 생각해보라. 그래서 당신은 절대 '여한이 없다'는 말과 함께 편안히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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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작 30대 직장인
낮엔 일하고, 밤엔 글을 씁니다.
주변에서 보고들은 것에 대한 생각을 끄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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