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Jan 26. 2017

동네 친구가 있는 마을

잃어가는 것들을 찾아가는 방법


 일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처형 댁을 찾았다. 처형이 외국에 근무하시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동서 형님댁이다. 나처럼 회사원인 형님은 여섯 살, 네 살짜리 두 조카를 키우며 살고 계신다. 주중에는 돌보미 아주머니가 오시지만, 주말에는 오롯이 두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형님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모랑 이모부 왔네~ 아까 이모 오면 무슨 얘기 해준다고 했지?"


 라며 작은 아이를 깨우신다. 오래간만에 아이들이 낮잠 자는 틈을 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계셨을 텐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1988년,


 부모님을 따라 서울 성내동 단독주택에 이사 왔을 때,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 동네처럼 우리 골목에는 2층짜리 양옥집 네 채가 있었다. 모두 30대 초중반에 아직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모여 사는, 그런 동네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이 터울은 조금씩 났지만 동네 아이들은 함께 어울렸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부터 집에 있던 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국민학교가 파할 시간이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숙제하는 아래 층 누나 옆에서 친구들과 딱지를 쳤다. 그리고 누나가 숙제를 마치면 다 같이 물총 놀이를 하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있던 연탄보일러를 없애고 골목의 모든 집이 등유 보일러 공사를 하던 1992년 여름,

 집 바닥을 모두 뜯어야 했던 대 공사를 앞두고, 골목 어른들은 순서를 정해서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공사 중인 집은 옆 집에 며칠간 신세를 졌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동네 이웃과 한 집 살이는 친구 방에서 함께 잠자고 같이 먹으며 학교에 등교하는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우리 집 공사가 끝나면 친구네 집이 우리 집으로 왔다. 학교가 끝나면 골목을 가득 채우는 기계 소리와 공사 장비로 어수선한 틈을 타, 우리는 해 질 녘까지 동네 놀이터에서 함께 뛰놀고 발가벗은 채로 마당 수돗가에서 모래를 씻었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돗자리 깐 마당에서 수박을 먹으며 다 같이 별을 보며 노래했다. 물론 모기가 많아 우리의 팔뚝은 항상 여기저기 붉게 부어올랐지만.


"형만 믿고 따라와."


 그 시절, 그때도 이미 맞벌이는 흔한 일이었지만, 우리의 부모 세대는 지금처럼 24시간 자식들에게 매어 있지 않았다. 동네에는 대장 노릇을 하는 나이 많은 형이 있었고, 그 형을 따라 다 같이 놀이터에 놀러 가면 부모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주말에 부모님끼리 자리를 비울 때도, 옆 집에 잠시 아이들을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밖에 아줌마가 어디 있어~~!"



 2017년,


 나는 서울 변두리 아파트 단지에 산다. 우리 층에는 총 여섯 가구가 살지만 서로 잘 모른다. 하지만 그중 아이들이 있는 집은 우리 옆 집 하나뿐인 듯하다.


 하루는 마트에서 과일을 사고 귀가하던 아내가 옆 집 사는 초등학생 꼬마를 마주쳤단다. 아파트 복도에서 혼자 킥보드를 타고 있던 아이에게 아내는 자두 몇 알을 봉지에서 꺼내 주었다고 했다.


 "밖에 아줌마가 어디 있어~~!"


 현관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오는 찰나, 옆 집에서 들려오는 아이 엄마 목소리. 그리고 아무한테나 이런 거 받아오면 안 된다며 이어지는 꾸중. 우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믿지 못하는 타인과 살고 있는 셈이다.


 주말에도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신문에서는 사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바빠서라고 하지만 사교육은 내가 어릴 때도 심하다고들 했다. 아마 이웃 간의 정이 사라져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놀이터는 기본적으로 한두 명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나름 동네에서 친해진 몇몇의 고정된 또래집단이 생겨야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요즘 아이들은 동네에 친구가 없다.


"내가 혼자 놀려고 어린이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친구가 없는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여가 시간을 온전히 빼앗을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삶도 파편화시킨다. 오늘날의 아이가 있는 젊은 부모들은 모든 여가 시간을 아이에게 투자해야 한다. 언제까지? 아이가 스스로 멀리 사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요즘 부모들은 회사 외에 다른 사회활동을 할 겨를이 없다.


 이런 현상은 아이들 친구 집단을 따라 부모들끼리도 자연스레 친구가 되는 경로마저 차단하여, '우리 빼고 모두가 남'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낸다. 물론 아이의 학교나 학원 친구들에 따라 커뮤니티가 만들어지지만 정보 공유 따위의 목적성이 개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거주지의 물리적 접근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런 친분관계는 더 이상 흔치 않다. 주말에 용무가 있더라도 아이를 옆 집에 편하게 맡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 집에 다니는 처조카들은 그곳에서 각자의 친구들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친구관계는 귀가 후에는 단절되는 듯하다. 동네에는 그 녀석들 또래의 아이들이 없고, 조카들의 이름을 알거나 귀엽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이웃 어른'도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 육아를 위해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하는 형님은 이번 주말도 자신을 위해서는 단 1분도 쓰지 못하실 것이다. 30대는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술 한잔 하고 싶고, 라이브 카페나 소극장에서 노래도 듣고 연극도 한 편 보고 싶은 나이일 텐데. 그리고 이 것은 슬프게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처할 현실이기도 하다.




 "넌 왜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니?"

 "넌 왜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니?"


 "응, 인사를 하면 아는 사람이 되잖아."


 한 회사 선배가 엘리베이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는 딸아이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놀이터에 가서 모르는 애들 옆에 얼쩡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함께 놀며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다소 내성적이고 외향적인 개인차는 있을지언정,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타인에 대한 장벽을 치지 않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선배들은 말한다. 애 키우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일이 챙겨주느라 내 삶이 없다고. 어쩌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의외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에서 얻어올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함께 있어주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이웃이라는 거대 공동체에 기대 볼 수는 없을까. 이웃 간의 신뢰, 다른 집 아이에 대한 관심이 타인과 유리된 우리의 삶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빡빡한 부모의 삶에서 벗어나 잠시 '나'를 찾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자랄 때는 동네에 함께 놀 수 있는 친한 친구와 이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챙겨주는 형이나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집 부모들도 집에 초대할 정도로 친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경조사가 있거나 부부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더 좋고.


 '공유'의 열린 정신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은 택시와 빈 방 말고 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린 그 방법을 이미 알고있지만 먼저 이웃에게 손 내밀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과 공유하는 것은 관리사무소와 도시가스 뿐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마지막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