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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25. 2017

같은 텍스트, 온도 차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동조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의 마음까지 열 수 있어야 해.


 A는 평소 내가 따르는, 열 살 연상의 지인이다. 삶에 있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를 상담하고 조언도 얻지만 정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다소 다른 성향 때문이다.


 하루는 우리나라 빈곤층에 대한 리포트를 읽고 느낀 바가 많아 A에게 카톡으로 공유하였다. 대충 왜 우리나라에는 통계에 잡히는 빈곤층이 없고, 가난의 대물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사회구조적으로 살핀 글이었다. 모바일로 읽기에 꽤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장실에서 숨을 죽이며 천천히 정독했었다.


 A는 채 반의 반절도 읽지 않고, 글이 조악하다고 말했다.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도 약하다고 했다. 단순히 현상에 대한 나열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원인과 결과를 잇는 논리에도 비약이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A가 그 글이 의도하는 바에 동의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대꾸했다. 세상 어디에도 특정 주제에 대해 완벽히 가치중립적인 사람은 없기에,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글에는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논리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쉽게 동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게 불편한 주제를 가진 글에는 어디 허점은 없는지, 행간에 호도하는 내용은 없는지 비판적인 자세를 쉽게 취한다.


 A는 내 말에 수긍하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글이라면, 동조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의 마음까지 열 수 있어야 해."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다시 그 글을 천천히 읽어 보았다. 사실에 기반하는 것 같으면서도 작가의 추정이 다소 개입되어 있었으며, 동의하지 않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할만한 해석과 용어들이 군데군데 발견되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유대를 공고히 하고 그들의 박수를 받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같은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논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 보였다.


 이쯤에서 미셸 오바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이 상황에 퍼펙트하게 들어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의 시각을 설득력 있게 상대방에게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형식과 논리를 갖춰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오늘 아침, 매니아적인 취미를 가진 A가 그 취미에 대한 전문 칼럼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연휴 때 심심하면 봐. 요건 진짜 재미남."


 열어봤더니 나에게는 역시나 재미가 없다. 관심 없는 사람도 흡입력 있게 빨아들이려면 눈높이를 낮춰 좀 더 흥미롭게 쓰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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