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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Apr 04. 2017

미술 시간의 추억

눈 앞의 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90년대 미술 수업은 대개 수채화와 데생으로 채워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4B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거나 팔레트에 담긴 물감을 물에 개어 붓질을 하는, 그렇게 눈 앞의 사물을 가급적 사실과 가깝게 그려내면 높은 점수를 받곤 했던, 창조보다는 모사에 가까운 미술.


 흔히 말하는 '그 나이 수준의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대로 스케치를 하고 될 수 있는 한 천연색에 가까운 채색을 했다.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그린적도 없었다. 어쨌거나 남들 눈에도, 그리고 내 눈에도 딱히 칭찬할만한 수준은 아닌 그림. 딱 그 수준이었다.


 모사를 표방하는 풍경화나 정물화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다른 미술 영역에는 관심이 있었다. 도배를 하는 날이면 굳이 새 벽지 위에 색도화지로 별별 장식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새 학기 시간표가 나오면 어떻게 예쁘게 만들까 고민한 끝에 과목별 아이콘을 고안하여 주말 내내 신나게 만들기도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나 꼴라주처럼 새로운 소재를 이용하거나, 점토나 공작을 하는 날이면 미술 시간이 기다려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약간의 손재주와 대상을 추상화하는 감각만은 나에게 조금 주어졌던 듯하다. 하지만 공작이나 디자인은 여전히 수채화에 비해 정통 미술로 인정받지 못한 영역이었던 탓에 그 소질을 계발해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진 못했는데, 종이 예술이나 점토는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 김영만 아저씨나 하는 것이고, 진정한 미술은 EBS <그림을 그립시다>에 나오는 밥 로스 아저씨 정도는 되어줘야 알아주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다. 미술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이름을 부르시더니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셨다. 지난주 그린 수채화가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귓가에 맴도는 윙윙 소리와 함께 순간 정신은 아득해졌고, 맞아서인지 아니면 창피해서인지 볼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억울했다. 열심히 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딴청 피우지 않고 성실히 그린 그림이었는데. 점수를 매기는 선생님 눈에는 졸작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꼬박 두 시간 걸려 창작한 작품이었다. 얼얼한 감촉이 뺨에서 사라질 무렵,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분함이 몰려왔지만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그렇게 수채화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으로 스스로 단정 짓고 미술과목에 흥미를 끊어버렸다. 게다가 상급학교, 상급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작이나 점토, 판화 실습은 더욱 줄어들었다. 학교에서 팔레트를 가져오라면 심드렁하게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고, 서예도구를 가져오라면 붓글씨를 썼다. 시험 범위를 알려주면 '아비뇽의 아가씨들', '인상파', '야수파, '마네'와 '모네' 등을 외워서 시험을 봤고, 앞 친구의 얼굴을 스케치하라면 스케치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미술 수업은 시간표에서 빠졌고, 자연스레 그 이후로 물감을 만져본 적도, 4B 연필을 잡아본 적도 없게 되었다.




 색감과 배치, 추상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건 대학 와서 전공을 광고로 정한 이후부터였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파워포인트로 시각화하는 과제가 많아졌고, 생각을 도식화하는 과정에서 청중에게 어떻게 보일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과제로 맡은 브랜드, 상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적합한 배색의 도형을 선택하고, 기획서 논리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은 피곤했지만 즐겁고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프레젠테이션 사례에 영감을 받아 내 것에 적용하는 것은 어린 시절 김영만 아저씨의 손동작을 따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생각을 심플하게 도식화하는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드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그리고 헤드 메시지를 뽑고 몇 가지 기본 색상만으로 시선을 끄는 레이아웃을 만드는 건 기본적으로 포스터를 그리는 것과 같았다.


 결국 학교 밖 생활 속의 미술은 기교가 아니라 생각한 것과 느낀 것을 표현해 전달하는 힘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깨달음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각자 판단할 수 있는 심미안을 길러주는 미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일률적인 과제를 내주고 점수화하는 것이 아닌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어려웠던 것일까.




 2007년 영국 어학연수 시절, 생활비라도 벌어보고자 공립중학교에서 파트타임 청소부 일을 한 적이 있다. 첫날 내가 배정받은 구역은 미술실이었다.


 '뭐 책상에 묻은 물감이나 지우면 되겠지.'


 라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매일매일 문을 열면 달라지는 미술실의 풍경에 놀라곤 했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기에.


 어떤 날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석고 가루가 한가득이었다. 물감은 물론 파스텔과 목탄도 이 곳 저곳 묻어 있었고, 바깥으로 통하는 미술실 문 근처에는 아이들이 퍼다 나른 모래와 잔디의 흔적도 가끔 보였다.


 그랬기에 미술실은 가장 힘든 구역 중에 하나였지만 난 그곳을 청소하며 나의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떠올렸다. 수학처럼 모범답안이 있던 그림들. 획일화된 교사들의 평가에 장려되지 않는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다양한 장르를 체험하기엔 턱없이 제한적인 예술교육 여건. 문득 낮 동안에 그곳에서 자유롭게 예술활동을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새삼 부러워졌다.


 한 번쯤은 미술 실기점수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라면 어떤 걸 그렸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중세 예술가들이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듯 인상 깊게 읽은 소설 속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하여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기교는 부족했겠지만 아마 상상력과 표현면에서는 칭찬받을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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