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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ul 07. 2017

인생, 그리고 신화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보다 노년에게 가혹한 것은 없다.


 45년간 공직자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청백리로서,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살았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지난 3일 열린 재판에 출석한 김기춘은 변호인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을 끝까지 ‘애국자’로 명명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6-70년대 엘리트 공안 검사였다.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던 사건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 무죄로 판명 났지만(기사 참조),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당시에는 정의였다며 끝내 반성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기춘은 단지 형량을 줄이기 위해 무죄를 주장하는 것일까? 정말 진심으로 지난날 자신의 행동이 정의로웠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의 자녀들이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을 담은 강풀 작가의 <26년>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전두환의 경호실장 마상열은 사실 5.18 때 민주화 운동 진압에 동원된 계엄군이었다. 그는 광주에서 자신의 행동에 가책을 느끼고 자살시도를 하지만, 결국 인지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두환이 정의로웠다고 믿어버리는 길을 택한다. 그 이후 자발적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이 된 그는 전두환 대신 총을 맞아 쓰러지며 이렇게 절규한다.

 

이 분은 역사다! 이 분이 잘못된 것이라면 나의 모든 과거가 잘못된 것이기에!

 

강풀, <26년> 中


 전두환의 과오를 인정하는 순간, 한 평생 그를 추종했던 자신의 인생 역시 잘못되고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그는 악에 바쳐 전두환의 파멸을 온몸으로 막아내려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비록 마상열은 픽션 속의 인물이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는 다른 마상열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잘 알려진 악질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자신을 나라에 헌신한 ‘애국자’라며 호소한 적 있고, 일제 시대 간도 특설대로 독립군을 잡아들인 백선엽이 그러하며, 김기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김기춘에게 그가 충성한 지난 정권들은 신화이며 역사여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 당시의 업적과 과오가 재평가당하고, 끌어내려지는 현실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는 진심으로 이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을 최빈국에서 살만한 나라로 만든 위대한 지도자다. 그리고 난 그의 위대한 시대에 조력한 애국자다. 그가 한 시라도 빨리 조국 근대화를 이룰 수 있게 나는 음지에서 불필요한 잡음들을 제거했다. 민주화의 열망? 노동 환경개선? 군사 교육 반대? 다 좋은 말이지. 하지만 그게 배를 채우고 잘 살게 되는 것보다 중요해? 내가 그런 것들을 잡아들여 족쳤기 때문에 지금 너희가 지금 이렇게 배 안 곯고 잘 먹고 잘 살게 된 거야. 모든게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온 너희는 진정한 애국의 길을 몰라. 그분의 시대는 신화고 역사다."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자기만의 신화를 만들고, 숭배하며, 그 가치를 추종한다.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자식이 신화가 되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회사에 충성하는 이들은 회사와 경영자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독실한 신도들 역시 영혼을 의탁하며 종교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식, 회사, 종교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화다.

 

 자식이 엇나가기 시작할 때 어미 마음이 미어지는 건, 모든 걸 희생한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경영자의 비리를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 장부를 찢어 회사 건물에서 뛰어내린 임원 역시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사이비 교단이 폐쇄될 때 일부 신도이 목숨을 끊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인용한 기사에서 한겨레 신문 석진환 기자는 위 기사에서 김기춘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변호했다’고 기록했다.

 

 ‘김기춘은 살아온 인생 전체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오직 블랙리스트 하나로만 처벌받는 건가요?’

 인터넷 검색을 하다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을 봤다. 중학생 아들이 물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심판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착하게’ 말해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기춘은 내 순진한 생각과 달리 최후진술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심판을 청했다. “45년간 공직자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청백리로서,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살았다”, “혁명적인 특검에 억울하게 구속됐고, 그 자체로 고위공직자와 지도자의 삶을 살아온 이에게는 참혹한 형벌이다. (삶이) 1~2년 남은 중병 노인에게 무슨 형벌이 필요한가?”

- 석진환, <김기춘을 위한 ‘사약’은 없다>, 한겨레 中                                             

 

 그럴 수 있다. 김기춘에게 이 것은 단순한 재판이 아니라 자신의 신화와 인생의 의미를 지키려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여생이 길지 않을 그는 새로운 신화를 찾아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울 시간이 없다. 국가와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고 믿었던 노년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보다 더 가혹한 것은 없다. 아마 그에게 내려질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무기징역도, 종신형도 아닌 그가 숭배한 신화와 인생에 대한 역사의 심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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