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상병 6호봉이던 2005년 여름, 8개월 만에 소대에 신병이 들어왔다. 경상남도 어디 처음 들어보는 시골에서 왔다던 그 녀석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위축되어 보였다. 아마 사회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짬밥 차이가 많이 나는 고참들과 생활하려니 긴장이 많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오늘처럼 무더운 날이었는데, 그 녀석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다. 1.5톤 트럭에 영덕대게를 가득 싣고 새벽부터 그 먼 거리를. 아들뻘 되는 우리들에게 끝까지 말을 놓지 않고 "우리 경민이 좀 잘 부탁드립니더."하시며 손수 대게를 뜯어주시던 녀석의 부모님께 그때는 그냥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하며 우적우적 먹을 줄만 알았지, 여름휴가철 대목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새벽부터 트럭을 몰고 오셨을 부모님의 마음까지 헤아리진 못했다.
"굿모닝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베이커리를 하시는데 아침에 갓 구우신 빵을 몇 개 가져와 탕비실에 두었어요. 하나씩 가져가서 맛보시고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닷!^^"
12년 전 그때처럼 4년 만에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모두 과장급 이상인 부서에서 이 친구가 느끼는 어려움도 그때 그 녀석과 같을까. 아마 이 친구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한 딸이 직장생활은 잘 적응하고 있는지, 같이 일하는 선배들은 괜찮은 사람인지 못내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출근하는 딸의 손에 들려 보낸 빵은 12년 전 그 녀석 부모님이 싣고 온 영덕대게와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귀한 자식이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의 자부심이고, 잘남과 못남을 떠나서 누구 하나 귀한 자식이 아닌 사람이 없다. 자식의 나이가 스물이 되어 대학에 들어가고, 서른을 넘겨 제 앞가림할 나이가 되어도 행여나 어디서 서러움 당하고 눈물 흘리진 않는지 항상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같다.
12년 전, 철 없이 그저 대게만 맛있게 먹었던 나는 그 녀석을 잘 챙겨주진 못했던 것 같다. 결국 군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녀석은 내가 말년 휴가를 간 사이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가고 말았는데,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게를 싣고 온 녀석 부모님을 떠올렸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리고 오늘 옆 자리에서 신기한 듯 이것저것 서류를 뒤져보는 신입사원을 본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들려보낼 빵을 굽던 그 친구의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든 동료들 뒤에 있을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린 모두 그렇게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그 '귀한 자식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친절해지자고 마음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