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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Aug 04. 2017

사병은 '노비'가 아니라오.

국민의 노동력과 세금으로 함부로 사욕 채우지 마라.


 2005년 3월, 군대에서 상병 때의 일이다.


 부대에 아들 군번(12개월 후임) 운전병 하나가 들어왔다. 총인원 100명 조금 안 되는 부대에 S대 경영학과 다니다 온 신병이 왔다는 것은 나름 큰 화제가 되었다. 아들 군번 후임병과는 보통 전역할 때까지 9-10개월 정도 같이 군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녀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나랑 동갑이었고, K대를 다니다 2학년 때 반수한 관계로 입대가 늦었다고 했다. 그리고 잠깐 다찌 트럭을 몰았던 것 정도.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녀석.


 녀석은 전입한 지 한 달이 채 안되어 느닷없이 사단 본부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면 알겠지만, 일반 사병이 복무하는 부대가 바뀌는 일은 사고를 쳐서 강제 전출 가는 것 외에는 극히 드문 일이다. 훗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녀석은 어디 높은 분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자제분 ‘과외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박찬주 대장 '공관병 갑질' 사건을 보면서 그 녀석을 떠올렸다. 나라를 지키려 입대했지만 개인을 위해 복무하다 전역했을 그 녀석. 그래도 놈은 좋은 학벌 때문에 '머리를 쓰는' 형태로 부림을 당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흡사 '관노(官奴)' 같은 형태로 군 복무 기간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관아에 귀속되어 온갖 일을 도맡아 하던 노비처럼 폭설이 내리면 농가 비닐하우스를 고치고, 폭우가 내리면 배수로를 뚫고, 산에 불이 나면 말통에 물을 채우고 불을 끄러 갔다. 심지어 부대 근처로 금고털이범이 지나간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밤 새 산속에서 곤봉을 들고 쪼그려 앉아 오들오들 떤 적도 있다. 시키는 일에는 공과 사의 구분이 없었다. 장교들이 개인적으로 시키는 일들도 그냥 어련히 해야 했다.


 하루는 저녁에 위병 근무를 서는데 동대장(지역 예비군을 관리하는 퇴역 군인) 하나가 자가용을 몰고 들어왔다. 그는 당당하게 부대 정문을 통과해 유류고로 가서 1,3종 계원(부식과 기름 관리하는 행정병)을 부르더니 자기 차에 기름을 채웠다. 날은 추웠지만 아직 사병 목욕탕에 온수가 공급되지 않았던 11월 초의 어느 날, 속으로는 어이없었지만 나는 비굴하게 기름을 채워 유유히 위병소를 빠져나가는 도둑을 향해 나는 '받들어 총'으로 예우해야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보고도 방조해야 하는 초라한 위치 때문에 생각을 가질수록 스스로가 힘들어졌다. 거의 무보수에 생각 없이 시키면 다 하는 ‘관노’. 이것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었을까.




 일반인이라면, 정말 양심에 거슬리는 업무를 지시받았을 때, 단호히 사직서를 쓰고 투서를 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한 사병에게는 전역하는 순간까지 사방이 높이 3m의 탈출구 없는 콘크리트 벽이다. 군처럼 폐쇄적인 조직에서 상관의 비리를 찌르거나 부조리함을 밝히는 일은 현역 장병으로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개 “더럽지만 전역할 때까지만 꾹 참지 뭐.”하고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악의 고리를 끊는 것이 더더욱 어려운 조직이 군대다. (게다가 부리는 입장에서는 이 놈이 전역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놈으로 보충된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시스템인가!)


 박찬주 대장 부부 사건을 군인권센터에서 접수하고 국방부에서 감사한다고 한다. 군을 관할하는 기관이라 정해진 절차상 그렇게 하는 것이 수순이라 쳐도 결과가 빤히 보이는 처사다. 사실상 사관학교 단일 학연이 꽉 쥐고 있는 한, 어느 정도 이상 제 식구 감싸기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군 폐쇄성의 본질이고, 창군 이래 이어진 방산 비리를 포함한 군과 관련된 모든 적폐 은닉의 온상이다.


 전역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2004-5년에 내가 군생활을 할 때만 해도, 부대 군수물자 창고에는 1982년에 제작된 수통이 비닐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새 것 상태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한국전쟁 때 미군이 쓰다 버린 찌그러진 수통을 썼다. 병사들이 마주하는 상황이 이러한 데도 군이 관리하는 독점 방산업체는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굴러간다는 게 너무나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들이 생산한 군수물자의 유통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투명하게 알고 있는 국민 역시 거의 없다.


 또, 한 해에 100명 가까운 병사가 여러 가지 사유로 군대에서 사망하지만,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국군 수도병원 영안실에 몇 년째 방치되어 있는 케이스가 수십 건이라고 한다. 이처럼 ‘보안’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인권 문제가 감춰지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국방예산과 군 내부 인적/물적 자원이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창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 없다.



 

 이번 박찬주 대장 부부 파문으로 오랫동안 묵혀왔던 군 지휘권 남용과 인권 문제가 제대로 파해쳐 지기를 바란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육군 중심의 비리를 척결하고자 별 연고가 없는 해군 출신의 국방부 장관을 앉혔다는 것이고, 그만큼이나 불안한 것이 있다면, 그 신임 국방부 장관마저 각종 방산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뒤가 구린 이라는 점이다.


 "전역하면 참모총장도 아저씬데 뭐~"


 현역 시절, 동원훈련에 참가한 한 예비군이 무심코 뱉은 말을 기억한다. 지금은 당신들 밑에서 찍 소리 못하고 시키는 일 아무거나 하는 20대 초반 어린 청년들이지만, 대한민국 군은 45% 이상의 국민이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하는 곳이다. 군에서의 2년간의 경험이 어떠했냐에 따라 남은 평생 동안 군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지가 결정된다. 사병은 당신들이 마음대로 쪼물락 거릴 수 있는 '관노'가 아니다. 국민이 제공한 시간과 노동력, 그리고 세금으로 함부로 몰래 사욕 채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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