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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Sep 06. 2017

감히. 누가. 내집앞에

왜 우리사회 '님비(Not In My Back Yard)'는 유독 심한가


 집에서 불과 500m 거리에 있는 한강 둔치 '구암공원'을 산책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초등학교 두 개를 지나친다. 하나는 폐교된 'ㄱ' 초등학교고, 다른 하나는 'ㅌ' 초등학교다. 아파트 단지가 많은 이 동네에 왜 굳이 초등학교 하나를 없애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요즘 저출산과 학생 수 감소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ㄱ' 초등학교 부지를 특수학교 건립에 쓰겠다는 교육청과, 특수학교로 인한 동네 이미지 절하(라고 쓰고 '집값 하락'이라고 읽는다.)를 우려한 지역주민, 그리고 이런 민심을 이용해 이 곳에 국립 한방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넣어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의 포퓰리즘까지 가세하여 이 학교 부지의 운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있다.


2015년 페교한 'ㄱ' 초등학교


 교육청의 주장은 여러 지역을 돌아봤지만 서울 서쪽 지역에 교육청 재량으로 특수학교를 지을만한 부지는 폐교가 있는 이 곳이 유일하다는 것이고, 주민들은 특수학교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우리는 '구암 허준'이라는 문화 유산을 이어받아 한방병원 지어야하니 안된다는 입장으로 강하게 맞서고 있다(실제로 허준은 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의 호를 딴 공원과 허준 거리가 있다. 공원 안에는 '대한한의사협회'가 있어 지역 주민들은 한방병원이 이 동네의 문화적 가치에 시너지를 줄 것이라 주장한다.).


 어제('17.09.05), 관련 기사를 읽고 아내와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특수학교 설립 주민 토론회'를 찾았다. 말이 좋아 토론회지 강당 안은 온갖 비방과 고함소리, 그리고 눈물이 뒤엉켜 있는 아수라장이었다.


 '왜 특수학교를 이 곳에 지어야 하는지. 대안은 없는지.'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아니라,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한쪽이 100% 양보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에서 설득과 논의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더욱이, 교육청 소관인 학교부지 사용과 관련하여 '국립 한방병원'이라는 협의되지 않은 대안을 공약으로 세운 국회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한방병원' 공약에 이미 눈이 멀어버린 아파트 주민들은 이성을 놓은 것처럼 보였고, '특수학교 찬반'이 아닌 '특수학교 vs 한방병원'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논쟁에 기름을 부어버린 국회의원은 처음에 할 말만 하고 토론회장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교육감 당신 집 앞에 먼저 세워라!"
 "주민 투표에 부칩시다!"


 라는 외침에 아파트 주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응했고, 결국 이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장애학생 학부모들 역시 기자들 카메라 앞에서 양심과 감성에 호소했다.


 "저는 다시 장애를 가진 제 아이를 하나님이 다시 준다고 하시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일 인내와 노력을 배웁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쁜 아이들이 아닙니다. 특수학교는 혐오 시설이 아닙니다.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겠습니다."


 이 발언에 학부모들은 우르르 일어나 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무릎 꿇었다. 기자들은 그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아파트 주민 대표는 "저건 다 계획된 쇼"라며 모두 퇴장하자고, 얘기 다 끝났다고 소리치며 사람들을 몰고 나가버렸다.(관련 기사)


주민들을 향해 무릎 꿇은 장애아 학부모들


 결국 조희연 교육감이 마지막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할 무렵, 동 대표로 보이는 중년의 아줌마가 마이크를 쥐고 퇴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악을 쓰듯 외쳤다.


 "도와주세요. 저희 동네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갑질 하는 겁니까? 우리는 장애인에게 갑질한 적 없습니다. 저희 동네 봉사활동 많이 하며 장애인들과 잘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특수학교까지 지으라고 합니다. 변두리라고 우리가 언제까지 무시당해야 합니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봅시다. 여러분!"




 다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에는 안산시에 세월호 분향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주민들이 반발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들해진 공동체 의식과 타인에 대한 부족한 배려심이 첫째 원인이겠지만, 개인의 양심 문제로 치부하기엔 이런 님비 문제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첫째,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무릇 주민들이 싫어하는 시설을 세운다면 그 불이익을 상쇄할만한 다른 혜택 역시 같이 주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특수학교를 설립하면 근처 다른 곳에 한방 병원도 같이 건립하는 식인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이미 인구 수용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꼭 필요한 복지 시설 부지를 마련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들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서민들은 무리 없이 동의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의 의미는 젊을 때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아파트 한 채 구입하여 거주 목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나중에 시세차익을 남겨 노년을 보내는 밑천이다. 따라서, 부동산 말고는 다른 대체 자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거의 전국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진통을 겪는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브랜드 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차별을 당해온 임대아파트 주민들 역시 특수학교 시설 반대에 나서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가진 자의 이기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내 것 조금이라도 쥔 대다수의 심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학군'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다. 학군은 그 지역에 사는 가정들의 경제적 수준과 그로부터 나오는 아이들 학력에 좌우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오염시설 같은 것이 주로 님비의 타깃이 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환경과 아무 관계없는 장애인 관련 시설 역시 혐오시설도 분류되는 이유다. 장애인 특수학교 들어서면 일부 거주민들이 장애인 가정으로 채워지게 되고, 당연히 이 지역 명문대 합격률에도 영향을 주어 장기적으로는 집값 하락의 원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해당 지역주민들이 이기적이라며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분명, 장애인을 2등 시민으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그런 비뚤어진 시선을 자녀들에게까지 가르친다면 그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차별 없는 시선으로 대하는 태도와 공익을 위해 보상 없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전자는 물질의 희생을 담보하지 않고도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회장에서 비매너적인 태도로 교육감의 말을 막고 막무가내로 막말하는 사람과 알량한 정의감 때문에 마음으로는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했지만, 한 편으로 자문해 보았다. 나 역시 이 동네에 내 명의의 집이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 혹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였다면 다시 또 선택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 속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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