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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10. 2018

너의 이름은

고3. 1화: 같은 공간 안의 토탈 스트레인저

 

 김정훈.


 학창 시절을 통틀어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초중고 12년의 시간을 떠올려 보았을 때 교우관계는 썩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것저것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성격이기도 했고, 한 해에 200일이 넘는 수업일수 동안 40-50명의 학급 친구들과 최소 한 번이나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모두 같은 나이에, 이름을 알고, 비슷한 지역에 살고, 또 공통으로 아는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점에서 같은 반 친구들은 이미 동질성이 강한 집합이었다. 짝이 되든 앞뒤로 자리를 배정 받든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널려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는 노래나 책상에 놓인 소지품, 연예인 얘기로 대화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촉매는 20평 남짓한 좁은 교실 안에 충분히 차고 넘쳤다. 하긴 한 반 안에서 커플도 여럿 나오는데 대화 한두 마디쯤이야.


 설령 그것이 "야, 담임이 교무실로 오래." "수학 숙제 좀 보여줄래?" 같은 다소 사무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대화였을지언정 초중고 12년 동안 같은 반이 된 모든 친구들과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나눠봤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다만 유일하게 단 한마디도 못해봤기에 또렷이 기억에 남는 친구가 한 명 있다. 학창 시절의 마지막 해이던 고3 같은 반이었던 김정훈.


 출신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달랐고, 이과반에서 전과해서 온 친구였기 때문에 그 동질성 강한 집합 안에서 공통의 배경을 찾기 쉽지 않은 녀석이었다. 딱히 멀리 지내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워낙 말수가 적은 친구기도 했고, 나 역시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자던 때여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정훈이는 우리 반에서 (지극히 개인적 관점에서) 가장 미남이었다. 그렇게 잘생긴 애가 말수도 없으니 왠지 연예인 느낌이 나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아웃사이더지만 밖에서는 다른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며 여자도 꼬시고 한량 짓은 하고 다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교내에서 노는 애들 무리에는 안 끼는 것 같고... 그렇게 전반적으로 마초적이고 신비스러운 이미지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아이라고 생각해서 먼저 마음의 벽을 쳤는지도 모르겠다.




 "다 모였으면 담임이 집에 가래. 이름 부를 테니까 확인되면 집에 가."


 수능과 기말고사가 끝나고 진로상담이라는 명목으로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모인 11월의 올림픽 공원. 반장이었던 나는 명렬표를 꺼내 들고 번호순으로 이름을 불렀다.


 "김민수, 김상수, 김성준, 김정훈..."


 다들 "왔어", "어", "여기!"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떠난 것과 달리 정훈이는 조용히 손을 머리 높이로 올리고 사라졌다. 그게 어쩌면 유일한 그 녀석과의 대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최소한 눈은 마주쳤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학교 다닐 때처럼 동질성 있는 집단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다들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고, 그나마 사는 동네가 비슷하거나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기해하며 반가워했다. 반면, 친해지려고 접근하거나 튀는 행동으로 주의를 끌려고 하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른의 세계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은 수많은 김정훈과 조우의 연속이었다. '모른 척'과 '의도된 침묵'은 때로는 적당한 거리로 각자를 방어하고, 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사회생활이 '룰'이기도 했다.


 하루에 적게는 아홉 시간, 많게는 열두어 시간 동안 회사에 머물면서 매일 나는 정훈이를 만난다. 같은 층에 근무하면서도 업무적으로 교류가 없는 사람들과는 목례만 하며 지나가도 무례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침묵을 깨기 위해 시작한 어색한 대화는 둘 사이를 더 어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럴 때면 별 다른 친분 없이도 옆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거나 초면에 거리낌 없이 반말로 말을 걸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의 같은 반 친구들은 얼마나 편한 존재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미성년의 마지막 해였던 고3은 다른 어느 학창 시절의 해보다 특별했다.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이 코 앞에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만큼 주변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도 달랐다. 다른 어떤 관심사보다 공부를 1순위로 놓아야 했던 그 한 해. 나는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전까지는 뭐든 다 잘하고 싶었다. 공부도 잘하고 싶었고, 선생님들의 인정도 받고 싶었고, 서클 생활도 잘하고 싶었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 외에 다른 것들이 다 후순위로 밀리고 나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었다. 18년 간 살아오며 나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해에 나는 고독을 좋아하는 나의 면모를 처음으로 느꼈다. 처음 가본 독서실 스탠드가 밝히는 범위 안에서 허락된 나의 조용한 공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책을 펼치고 집중하는 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순간의 자유를 어쩌면 나는 즐겼는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말하겠지만, 1, 2학년 때 놀러 다니고 서클 생활한다고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3학년에는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해야 했다. 교실에 앉아 작문, 문법, 세계지리, 한문 이딴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새벽 두 시에 독서실을 나와 새벽 세 시에 잠이 들었고, 아침 여섯 시 반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학교에서는 잠자기에 바빴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 보면 쉬는 시간을 건너뛰어 수업이 바뀌어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와서 사물함 위에 누워서 잤다.


 당연히 고3에 올라와 우리 반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기에 정훈이처럼 '한 마디도 못해서' 기억에 남는 친구가 생겨나는 건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다.


 2001년, 사회적인 관점에서 나는 서울 변두리 모 고등학교 3학년 2반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외부와의 소통을 최소화한 채 겨울잠을 잤다. 방관자적인 태도로 학교생활을 바라보고 가끔씩 엎드려 자다가 깨어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주변 친구들을 봤다. 거기에 김정훈도 있었고 주변의 다른 친구들을 있었다. 이 시리즈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고3 시절 '별로 친하지 않았던' 학급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현재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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