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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Oct 24. 2017

마이너리티 리포트

고3. 4화: 진짜 강한 사람은 메이저리그에 없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학급 임원 조직을 구성하는 날, 그는 미화부장 자리에 손을 들고 지원했다. 고3이라 서로 미루기만 했던 부장 자리, 그것도 미화부장을, 남자아이가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전학 온 지 일주일도 안 되는 녀석이.


 정민이는 3월 새 학기에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당시(2001년)에는 흔치 않은 가죽 크로스백을 멘 그는 천계영의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에나 나올 것 같은 긴 속눈썹에 긴 팔다리를 가진 '만찢남'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녀석이 왜 미화부장에 나서서 지원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다소 여성적이고 패셔너블한 그의 용모에 비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자반을 꺾고 환경미화 1등을 차지하겠습니다."


 그의 패기는 체육과목을 담당하는 젊은 담임의 눈에 매우 흡족한 것이었고, 담임선생님의 지원 아래 정민이가 하자는 대로 일은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웃 남자반에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던 환경미화 우승을 위해, 우리 반 전체는 방과 후에 오와 열을 맞춰 복도며 창틀이며 거품을 내서 박박 닦았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미화부장 정민이의 열정에 비하면 다른 아이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끔 등굣길 교차로에서 그를 마주쳤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정 가죽 크로스백을 메고 츄파춥스를 쪽쪽 빨면서 한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멀리서 누가 온다 싶으면 항상 정민이었다. 어떤 날은 형형색색의 도화지였고, 또 어떤 날은 파티용품 같은 것이었고, 심지어 어떤 날은 화분들을 들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에 가져온 재료들은 정민이 손에서 예쁜 오브제로 변신했다. 작은 화분들을 가져온 날, 정민이는 아침 자습 시간에 의자 위에 올라가 칠판 위 선반에 가지런히 그 화분들을 손수 올렸다. 아이들은 공부하다 말고 그런 정민이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야, 그게 다 뭐야?"


 맨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 묻자 그는 시크하게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디테일이야(찡긋)"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들은 정민이를 별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반은 여자 8개 반을 누르고 남자 반으로서는 개교이래 최초로 환경미화 우승을 차지했다. 임정민 혼자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반과 비교해도 우리 반이 제일 예뻤다. 시간표와 조직도 그리고 창틀과 칠판 위에 조화롭게 놓인 오브제. 뭐 하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그냥 예뻤다. 몇몇 선생님들도 "여기 3학년 남자 반 맞냐"라고 할 정도였으니.


 정민이는 나름 이 일을 계기로 나름 학급 안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 대화에 끼려고 노력했고, 또 그간의 그의 노력을 보았을 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정민이의 다소 여성스러운 행색과 말투 그리고 너무 사근사근한 성격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대개는 담임을 설득해 환경미화를 너무 빡세게 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던 녀석들이었다.




 정민이는 풍기는 아우라와 어울리게 향유하는 문화도 또래 고3 남학생들과 달랐다.


 하루는 정민이의 가방에서 <바그다드 카페>라는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었다. 물론 테이프 라벨에 붙어 있는 약간의 삽화와 노란띠의 '고교생 관람가' 표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겠지만 정민이에게 반감을 품은 몇몇 아이들은 "임정민 학교에 야동 테이프 갖고 다닌다."며 선동하고 다녔다. 한참 인터넷을 통해 기상천외한 제목의 야동이 퍼지기 시작할 그 무렵, 제목만 들은 아이들에게 <바그다드 카페>는 중동의 어느 도시 카페에서 카페 주인과 여종업원이 한 바탕 벌이는 정사를 담은 포르노라고 상상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와 같지 않은 이질적인 이방인 임정민에 대한 증오와 따돌림 기제가 반영되어 있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야, 이 무식한 것들아. <바그다드 카페>는 포르노 영화가 아니야..."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정민이는 꿋꿋이 사근사근한 태도로 아이들 무리에 녹아들려 노력했다. 마치 이 행성 저 행성 찾아다니며 친구를 찾는 어린 왕자처럼.


 정민이를 안 좋게 보는 아이들은 대개 소위 껌 좀 씹는다는 아이들이 아니라 예상외로 공부도 잘하고 완력도 센, 나름 학교 내에서 '모범생 파워'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학급 안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던 그들은 정민이의 여성스럽고 튀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성격의 아이가 가만히 찌그러져 있으면 상관없을 텐데 자꾸 학급 일에 나서려 하고 눈에 띄니 거슬렸나 보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는 물음에, 누군가가 답했다.


 임정민이 김대운 공부하는데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죽빵 맞고 나갔어.




 대운이는 우리 반에서 1,2등을 다투며 운동도, 싸움도 잘하는 친구였다. 정민이를 가장 못마땅하게 보던 그였기에 언젠가는 일이 날 것 같다는 기운을 감지했지만 정민이는 안타깝게도 그 시그널을 느끼지 못했나 보다. 여느 때처럼 호기심이 많았던 그였기에 대운이 옆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가 공부하며 듣는 CD 몇 장을 들춰보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걸었을 것이었다. 그게 마침 기회를 봐서 적당히 손 봐주려던 대운이의 심기를 건드렸을 줄이야.


 그리고 정민이는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언젠가 정민이가 체육시간에 와서 자기 가방과 사물함의 물건들을 챙겨 꾸벅 인사하고 갔다고 했다.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운이도 특별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고, 담임 선생님도 진실은 알았겠지만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던 듯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민이와 친하지 않았으니 아무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고, 그중 몇몇은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 사건에 무신경했다.


 얼마 후 누군가 종례시간에 담임에게 물었다.


"선생님, 임정민 왜 학교 안 와요?"


 이유는 알지만 담임의 공식적인 답변을 듣고 싶다는 속 보이는 질문이었다. 담임 역시 '뭘 알면서 물어봐 인마.'하는 표정으로 씩 웃고 말았다. 마이너리티가 희생되었을 때 대다수의 메이저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이러했다.


 그렇게 정민이가 교실에 남긴 오브제들은 아이들의 방치 속에 점점 빛이 바래갔다. 장난치다 부숴버리기도 하고, 걸리적거린다며 청소하다 버리기도 했다. 칠판과 창틀의 작은 화분들도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시들어갔다. 그가 남기고 간 오브제들이 대부분 철거되어 사라질 때쯤, 전학생 임정민 역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몰개성한 사회는 단 한 가지 다른 삶의 양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남학생 50명이 모인 고3 교실에서 마이너리티 섹슈얼을 드러내는 것과 지나치게 적극적인 행동은 다른 아이들의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무리에 속하지 않고 홀로 광야를 누비는 들개가 떼 지어 사는 하이에나 집단에 접근하려 하면 물어 뜯기고 발에 차이는 것처럼.


 학교를 벗어났지만, 어른의 세계도 마이너리티를 대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단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여혐’이나 ‘외국인 혐오’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이너리티 차별을 일상 속에서 마주치고 무신경하게 지나친다.


 “저 새끼는 머리랑 옷차림이 왜 이리 게이 같아?”
 “화장이 저게 뭐야. 밤에 술집 나가는 거 아니야?”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가정과, 학교, 직장(그리고 남자의 경우는 군대)을 거치며 형성된다. 특히 10년 넘게 진행되는 획일화된 제도권 교육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심어준다.


 “어디서든 튀지 말고, 집단이 지향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사람이 되렴. 그것이 너를 메이저 그룹 안에서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


 그렇게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다양성을 배제하고, 튀지 말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의 부산물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린치와 반정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된다.




 얼마 전, 내가 다니던 수영장에 젊고 열정적인 수영 강사가 새로 부임했다. 이 수영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근처 전세 집도 계약했다던 그 수영 강사는 어느 날 느닷없이 그만두었다.


 “선배들이 회원들 너무 세심하게 가르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하다가 결국에는 따돌려서요.”


 얼마 후 같은 반 회원들과 만나본 강사는 술 몇 잔 들어가자 이렇게 말했다. 적당히 하는 것이 메이저리티의 관습이었고, 세심하고 열정적인 강습으로 회원들의 눈을 높이는 것이 싫었던 다른 강사들은 결국 그를 버티지 못하게 따돌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너리티의 길을 택하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메이저에 편입되어 편안한 길을 걷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삶의 자세와 신념,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수영 강사는 대충 적당히 강습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회원들과 함께 땀 흘리며 발전하는 모습을 관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너는 메이저보다 훨씬 용기 있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고3 시절 내가 만난 임정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몰개성을 가르치는 대한민국 학교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눈치 보지 않고 능동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게 안정된 물 분자처럼 등 떠밀려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의 심기를 불편하였을지언정 그는 용해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암모니아 분자였다.


 가끔 정민이를 생각한다. 비록 한 달 남짓 같은 반 친구로 지내면서 몇 마디 대화도 못 나눠봤지만,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존재감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곱씹게 된다.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며 우리는 더 동질성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집단 밖에 겉도는 타인을 헐뜯고 배제하며 메이저리티의 결속력을 다진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는 주류 집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과 나약함에 기인할 뿐이다. 진정 강한 사람은 메이저리티에 자신을 맞추며 집단 안에 숨죽여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개성을 지켜나가는 정민이 같은 마이너리티라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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