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Jun 15. 2018

따릉이 출퇴근을 하다.

자전거를 타고 붕붕


 출근을 위해 매일 지옥철 9호선을 이용해야 했기에 난 늘 대안 교통을 꿈꿔왔다. 하지만 자동차를 이용하기엔 주차비가 부담이었고, 그렇다고 버스를 타자니 지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은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던 내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 한 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자전거나 한 번 타볼까?"

 사실 무동력 교통수단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내 마음속 장벽만이 문제였을 뿐, 사실 자전거 출퇴근을 위한 모든 조건은 이미 내 주변에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먼저, 회사와 집이 모두 한강변에서 1km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강변에 생활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조망과 근린시설에 대한 접근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훌륭하게 닦여져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 훌륭한 조건까지 갖추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물론 강변이 아니더라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 시내의 자전거 도로는 그다지 잘 정비되어 있지 않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시 자전거도로의 총연장은 869km인데, 그중 자전거 전용도로의 비율은 18.3%에 불과하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지역에서 차량도, 보행자도 아닌 자전거는 어느 도로와 인도 모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일뿐이다.

 또한 서울의 지형은 평지인 강변에서 시작하여 점차 외곽으로 뻗어나갈수록 언덕진 지형으로 변화한다. 강북은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제외하고는 평지가 수 킬로미터 이상 이어진 도로를 찾기 힘들고, 강남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호등이 없고, 자전거 도로가 끊기지 않으며, 평지인 한강변에서 페달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 출퇴근의 제 1 조건으로 꼽힌다.

 둘째로, ‘자출’ 친화적인 회사 시설의 뒷받침이 있었다.

사이클링이 격렬한 에너지 소모를 요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30분 이상 페달을 밟으면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마련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해도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면 진이 빠지는 회사생활인데, 끈적이는 땀냄새와 함께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행히도 새로 이사 온 회사 지하에는 자전거 전용 주차장은 물론 라이더들을 위한 샤워시설이 마련되었다. 덕분에 자전거를 실내에 주차하고, 샤워를 마친 후 상쾌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샤워장을 개관했을 때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자전거 출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개관 며칠 지나지 않아 샤워장 분위기는 사내 라이딩 동호회와 비슷해졌고, 서로 사는 곳과 루트, 자전거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린님은 복 받은 거예요. 저는 집이 OO동이라서 회사 올 때는 페달 거의 안 밟고 내리막 길로 오거든요? 그런데 집에 갈 때는 오르막이라 그냥 자전거 끌고 가요.”

 마지막으로, ‘따릉이’라는 고마운 제도가 있었다.

 사실 나는 싸이클링 애호가도 아니고, 취미로 자전거를 타지도 않는다. 출퇴근만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려는 나에게 백 만원을 호가하는 자전거와 장비들을 구입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나 같은 이들을 위해서였는지 서울시에서는 2014년부터 ‘따릉이’라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8년 현재 천 여 곳 이상이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우리 집 앞과, 회사 앞 지하철 역 앞에도 따릉이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어, 거의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자전거 출퇴근이 가능하다.

 직장인 자출족에게 따릉이가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저렴한 가격이다. 1개월 정기권 가격(하루 1시간 기준)은 5,000원으로 지하철이나 버스 네 번 탑승 요금과 비슷할 정도로 저렴하다. 나는 1개월 시승해보고 만족도가 높아 6개월 정기권을 구매했는데, 6개월 정기권은 15,000으로 1개월 정기권보다 두 배 합리적이다.

둘째로, 편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요즘 같이 대기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에 특히 유용하다. 아침에 맑은 하늘을 보고 자전거로 출근했는데, 퇴근 무렵 하늘이 미세먼지로 뿌옇게 뒤덮였다면? 아침 예보에는 없었는데, 저녁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아니면 갑자기 저녁에 회식이 잡혔다면? 내 자전거라면 밤 새 거치대에 묶어 놓고 퇴근하기가 매우 찜찜했을 테지만, ‘따릉이’의 경우 처음 대여했던 장소로 반납할 필요가 없으므로 매우 편리하다. 아침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지만, 퇴근에는 탈 수 없을 때, ‘따릉이’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자전거 출퇴근은 여전히 불편한 일이 많다. 특히 나처럼 정장을 입는 것이 권장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경우 구두와 셔츠, 정장을 싸 들고 다니거나 깨끗한 상태로 사무실에 보관할 수 있게 신경 써야 한다.

나의 경우, 정장 재킷은 사무실에 두고, 가벼운 정장 가방에 셔츠 한 벌과 다림질한 정장 바지를 어깨에 맨 채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하루는 깜빡 잊고 셔츠를 챙겨 오지 않았는데, 샤워장에 도착해서야 그걸 알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 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남들 출근하는 아침 8시 반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셔츠를 가지고 회사로 와야 했는데, 자전거 출퇴근은 그만큼 꼼꼼히 챙겨야 할 부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출퇴근은 여전히 옳다. 기껏해야 노래를 듣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나의 출퇴근 시간에 조금이나마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특히 비가 그치고 날이 무척 맑았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하는 출근길이었지만,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결과 자전거 도로변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이런 아침저녁 풍경은 덤이다. 나의 출근 여정을 이 페이지를 빌어 한 번 공유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치게임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