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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23. 2018

눈치게임의 딜레마

내가 고른 답이 항상 폭망인 이유


#1. 출국장


 화요일 아침, 김포공항 출국장은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관령 넘어가는 2차선 도로처럼 꾸불텅꾸불텅 늘어선 줄 맨 뒤에 서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족히 30분은 걸릴 듯 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다보니 사람들이 대열에 이탈하여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사람들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따라가보니, 커다란 백자 항아리 뒤로 줄이 하나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가보라고 할 텐데 섣불리 움직였다가 APEC 카드 소지자나 다른 우대 사항을 가진 사람들 전용 게이트라면 낭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줄을 서야 할 테니.


A black Tuesday morning


 반절 이상 왔을 때쯤, 공항 직원이 저쪽도 일반 줄이니 나눠 서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제서야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움직였다. 다행스럽게도 원래 줄 보다 앞에 선 사람들의 수는 반도 안되는 것 같았다. ‘미리 처음부터 움직였으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이나마 시간을 아끼게 된 게 어딘가.

 그런데 생각보다 새로 선 줄은 훨씬 느리게 움직였다. 먼저 옮겨와 줄을 선 사람들의 일행들이 계속 중간에 합류하기도 했거니와, 결정적으로 원래 섰던 줄은 마지막에 3개의 게이트로 분산되는 반면, 새로 선 줄의 끝에는 하나의 게이트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원래 줄에서 기다렸더라면 벌써 들어갔을 텐데...’ 나는 투덜거리며 보안검색장에 들어섰다.




#2. 보안검색대


 출국장에 원최 사람이 많았으니, 보안검색장이라고 사정이 나을리 없었다. 눈에 보이는 가장 짧은 줄에 섰는데 또 그게 실수였다. 보안검색대가 정면에 나란히 배치된 것이 아니라 좌측면에 병렬식으로 띄워져 있었던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즉,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을 뿐, 출국장부터 각각의 검색대까지 거리는 모두 달랐던 것이다.

 불행히도 내가 선 줄은 출국장 게이트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검색대였고, 짧은 줄에 섰다고 흡족해하던 나는 또 다시 남들보다 오래 걸려 검색대를 통과해야했다.




 #3. 그리고 마지막 출국심사대


 당연히 자동출입국심사가 더 빠를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을 줄이야. 이제 자국민이라면 거의 누구나 자동출입국심사 이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미리 눈치 챈 사람들은 이민국 직원이 처리해 주는 심사대에서 빨리빨리 빠져나갔고,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중간에 이탈하지도 못한 나는 계속 남아있다가 앞에서 허둥대는 단체 어르신 승객들 때문에 또 속절없이 애만 태웠다.






 출국심사대를 빠져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사회란 이렇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비트코인과 주식투자를 둘러싼 대국민 눈치게임의 경우엔 더더욱.

 출국장에서 나는 들어가야할 타이밍에 망설이다가 적기를 놓치고, 모두가 새로운 줄이 블루칩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투를 잡고 움직였다. 블루칩이라는 사실이 소문나자 여기저기 편법으로 시장을 혼란시키는 자들(먼저 선 사람들의 일행들)이 끼어들기 시작했고, 막판에 가서야 이 줄이 블루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원통해했다.

 보안검색장에서 나는 제대로 상황파악하지 못한 채 나름 저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짧은 줄을 골라 잡았다. 하지만 그건 훼이크! 저평가 된 종목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출국심사장에서는 새로운 호재(자동심사)가 있다고 알려진 종목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이 종목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른 종목들이 반사이익을 보며 상황이 역전되는 것을 목격했지만 나는 끝까지 손절하지 못하고 하락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불확실성을 내포한 이 종목은 막판에 악재(자동화에 익숙치 않은 단체 관광객)까지 터져 내 애간장을 태웠다.




 위 상황에서 내가,

 출국장에서 다시 맨 뒤에 서야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 줄에 서기 위해 대열을 이탈했다면,
 보안검색대에서 제일 짧아보이는 줄이 아닌 다른 줄을 선택했다면,
 그리고 자동출입국심사가 아닌 이민국심사대에 줄을 섰더라면,

 난 훨씬 더 빨리 탑승동에 도착하여 아마 면세점에도 들러 아내의 심부름까지 깔끔하게 미션 컴플릿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판단을 내릴 당시로 시간을 돌려보면 저것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답이 될 수 없었다.

 우리는 투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좋은 답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그 답은 내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와 돌발상황,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심리 게임에 의해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돌이켜 보면, 작년 가을, 지인이 비트코인을 추천해 주었을 때 2백만원이 이미 비싸다며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 때 내가 어리석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나름 이성적인 촉에 의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 잘못된 줄의 맨 뒤에 서고 뒤늦게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한다.

 결국 나는 고작 공항에서 수백명과 벌이는 줄 서기 경쟁에도 쉽게 패배하는 지극히 보통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수백 만명을 상대로 벌이는 눈치게임과 운의 향연에서 상위 포식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겠다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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