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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Nov 20. 2017

윤지성 군에 부쳐

누나팬이 아니라 미안해, 지성아


 팬레터라고 해야 하나. 

 난생처음, 그것도 남자 아이돌 가수에게,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늦게 써 보냅니다. 안녕 지성 군. 저는 워너원 강다니엘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내를 가진 서른다섯 살 직장인입니다. 서른다섯이라고 하니 무척 나이가 많아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우리 나이 차이가 지성 군이 같은 팀에서 활동하는 박지훈 군과의 나이 차이와 같으니, 우린 또래라면 또래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늦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지만, 사실 응원하는 참가자에게 문자 값을 들여 투표를 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6년 전쯤 '슈퍼스타 K'에서 '투개월'이라는 듀오에게 딱 한 번 표를 던진 적은 있네요. 이번 '프로듀스 101'도 매회 본방 사수하며 재밌게 보긴 했지만 마지막회가 시작할 때까지도 투표할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저 정말 떨어지면 안 돼요. 저희 부모님이 저한테 투자한 것만 생각해도..."

 제대로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회 초반 인터뷰에 지성 군의 저 말이 왜 마음을 울렸을까요. 강다니엘 군에게 투표하라는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국 지성 군에게 한 표를 보냈습니다.



 지성 군,


 저에게는 지성 군 또래의 사촌 동생들이 여럿 있습니다. 다들 20대 후반인데, 취업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지요. 저는 아마 그 순간 지성 군의 모습에서 그 또래의 다른 청년들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저 정말 떨어지면 안 돼요. 저희 부모님이 저한테 투자한 것만 생각해도..."라는 말은 지성 군 또래의 스물 일고여덟 살 청년들이 면접장에서 말하고 싶은 진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죠. 대학 졸업장 하나 달랑 쥔 채 사회로 떠밀린 빽 없는 청년들의 모습은 이름 없는 소속사 MMO에서 출전한 나이 많은 연습생 윤지성과 너무나 닮아 있었고, 그게 제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릅니다.



​ 저는 선한 사람들이 성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스 101' 전 회를 보면서 참 인성이 바르다고 생각한 두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김종현 군과 지성 군입니다. 그 외에도 얼마든 선한 참가자들이 많았을 테지만, 방송에서 본 게 전부인 저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종현 군이야 겉돌던 권현빈 군을 이끌어가는 미담이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났지만, 지성 군의 경우는 동료 참가자들의 인터뷰에서 그걸 느꼈습니다.

 2차인가 3차 순위 발표식이 었을까요. 임영민 군이 "전 정말 형에게 의지합니다. 근데 형은 잘 모를 거예요."라고 했던 인터뷰나, 지성 군의 순위가 호명된 후 아래층에 있던 최민기 군이 "형, 정말 수고하셨어요."라며 진심 어린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서 '아, 저 친구는 이 삭막하다면 삭막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동생들을 잘 챙기며 인심을 얻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송에서 나오는 행동은 꾸밀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진심 어린 말은 꾸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 군,

 저는 지성 군처럼 좋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오래도록 빛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성 군의 간절함과 좋은 인성 때문에 표를 던졌지만, 지성 군이 아이돌 가수로서 가진 탤런트는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나 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돌 가수의 주 타겟층인 소녀들을 휘어잡을 매력. 이런 것들은 팀 내의 다른 멤버들이나 다른 보이그룹에 비해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같은 팀의 라이관린 군이나 배진영 군처럼 나이가 어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케이스도 아닙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레전드라고 불리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이 있었습니다. 지성 군도 방송에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드라마를 기억한다고 했으니 아마 이 그룹을 잘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H.O.T라는 그룹입니다. 정말 97년부터 2000년 정도의 가요계는 이들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었죠. 하지만 수많은 팬덤과 기록을 남긴 이 그룹은 2001년에 해체하고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지명도가 있던 두 멤버는 소속사에 남아 솔로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지만, 재계약이 불발된 세 멤버는 J.T.L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예전의 팬 층 덕에 인기는 꽤 있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무렵 MBC에서 방영한 '게릴라 콘서트'라는 예능 프로가 있었어요. 콘서트 반나절 전부터 가두 홍보를 시작해서 목표한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콘서트가 불발되는 그런 프로였는데,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J.T.L의 한 멤버가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너희, 너희... 이제 H.O.T 아니라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나요 지성 군. 잘 나가는 그룹에 속해 있을 때는 멤버들 간의 실력이나 인기의 편차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성운 군도 워너원이고, 황민현 군도 워너원이고, 옹성우 군도 워너원이고, 윤지성 군도 워너원입니다. 하지만 팀이 해체하고 나면 그 시너지는 사라지고 각자 도생해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특히 워너원처럼 활동기간이 내년 말까지로 정해져 있는 경우 그 시기는 훨씬 빨리 찾아옵니다.

 지금은 정신없는 스케줄과 인기로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느끼게 될 날이 올 겁니다. 그 날을 대비해서 롤모델을 설정하고, 부단히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문희준 씨나 김희철 씨처럼 예능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도 좋습니다. 지성 군에게는 그 방면으로 소질이 있어 보입니다. 단, 그들처럼 다년간의 꾸준한 아이돌 활동을 통해 인지도와 팬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보컬 능력을 키워서 스스로의 장르를 개척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 워너원 멤버 중에 음악적 지향점이 비슷한 친구들을 찾아서 계획을 세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부디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하길 바랍니다. 인기는 순식간에 새로운 라이징 스타에게 넘어가고,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강렬한 성공만큼 인생에서 독이 되는 경험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 군을 오랫동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스물일곱 살 늦깎이 아이돌이 롱런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십 년 후에도 활동을 하고 있다면,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싸인을 받는 장면을 싱겁게 상상도 해봅니다. "나 옛날에 '프로듀스 101'에서 너 뽑았어. 나도 윤씬데 너는 어디 윤씨니?"라고 너스레를 떨며 말이죠.

 편지가 길어졌네요. '프로듀스 101'이 끝났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어느덧 겨울의 초입입니다. 연예인은 체력이 생명인데 모쪼록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새 앨범이 나왔는데 이번 활동도 팬으로서 기대가 많습니다. 언제나 건승하고 발전하는 지성 군 되시라는 상투적인 응원의 말로 편지 마칠까 합니다.  

 2017년 11월.
 지성 군의 형님 팬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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