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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1. 2018

생애 대부분의 시간이 기다림이라면

[Day 13] 사물의 시선

"이상해. 엄마가 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침대로 오질 않아. 아빠는 벌써 아까부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조명을 밝혀 놓고, 타닥타닥 엄마가 일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내가 마루를 달릴 때마다 내 발톱에서 나는 것 같은 경쾌한 타닥타닥소리. 하지만 저 소리는 어쩐지 무겁고 슬프게 들려.


밖으로 나가본다. 빛과 소리가 나는 커다란 화면에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엄마는 그러든지 말든지 무표정으로 빛과 소리가 나는 작은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 타닥타닥 내 발걸음소리에 엄마가 내 쪽을 쳐다봐. '마하, 엄마 걱정 되어서 나왔어? 아이고, 엄청 졸려보이네. 신경쓰지 말고 자.' 


항상 저런 식이지. 걱정이 되긴 개뿔. 그냥 엄마 다리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야 잠이 잘 오는데 엄마가 안 와서 잠이 안 오는 것 뿐인데! 내가 졸린 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시간에는 눈이 잘 안 떠지는 것 뿐인데. 항상 저렇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더라.


가만히 엎드려 두 앞발로 턱을 괴고 엄마를 바라본다. 내게서 시선을 거둔 엄마는 다시 일에 열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까지 필사적인걸까? 아까 저녁에 아빠랑 대화하는 걸 들었는데, 아빠가 내 사료를 주문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엄마가 아직 2주는 더 버틸 수 있다고 7월에 카드값이 갱신되면 주문하겠다고 하더라. 내 사료가 비싼거라 3개월에 한 번씩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 이거 안 먹고 더 싼 거 먹어도 되니까(사실 이건 좀 맛도 없다, 굉장히 몸에 좋은 거 같긴 하지만) 엄마가 이제 그만 들어가서 나랑 같이 잤으면 좋겠어.


자꾸 눈이 감기네. 엎드려 있자니 어깨가 결리고. 엄마가 베란다문을 열어놔서 시원한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거실에는 향치자의 꽃향기가 가득해. 왠지 구름길 산책을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슬슬 몸을 옆으로 뉘여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엄마한테 미안한데. 이러면 안 되는...." 


다시, 무얼 위해 사는걸까-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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