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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1. 2018

영생 또는 보브컷

[Day 25] 미래의 모습

한동안은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고 그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공상?)하며 지냈습니다. 이 욕망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요. 


내가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모든 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내가 나라면 선택할 모든 상황의 수를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그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날의 나를 기준으로 하드웨어 혹은 가상현실 속 비주얼을 만들고 등등...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 아무도 없이 너 혼자 영생하는 삶이란 너무 외롭지 않겠니?" 그런 뱀파이어 영화의 설정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런 새로운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고 싶어서 영생하고 싶은 거라고 받아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마음 맞는 누군가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영생을 누리자고 꼬드길 수도 있고.


다만 오늘, 남편도 반려견도 없이 단 30분 동안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느꼈던 이유 모를 헛헛함, 외로움, 심심함 같은 걸 곱씹어 보니, 한 세기는 커녕 단 30분도 못 버티는 이 현실 속에서 영생이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졌습니다. 가능하다면, 요즘의 나날만 영원히 구간반복되는 가상현실 속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공상도 있지만, 역시 우리 남편은 늙어 죽더라도 네오처럼 빨간 알약을 선택할 것 같군요. 


2060년... 대충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텐데, 그때도 이 작은 집에서 내 곁에 남편과 마하가 함께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그런 소소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렇다면 나의 궁금증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생을 누릴지 아닐지가 아니라 한국 할머니들의 시그니쳐 스타일인 뽀글이 파마를 했을까 아니면 흰백발을 단정히 빗어 짧게 자른 보브컷을 선택했을까-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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