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6] 기념일
1982년 3월, 엄마와 아빠는 고향 시내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맞선자리였다. 수줍었던 엄마는 남색 양복에 겨자색 실크 스카프를 매치한 멋쟁이 아빠가 내심 마음에 들었지만 선뜻 먼저 말을 붙이지 못 했고, 지금도 무뚝뚝한 아빠는 녹차만 연거푸 들이킬 뿐이었다.
두 사람의 적막과는 별개로 다방 안은 다소 시끌벅적했는데 홀에서 시선이 가장 잘 닿는 자리에 매달린 텔레비전에서 마침 한국 프로야구의 첫 개막전이 펼쳐지고 있던 참이기 때문이었다.
"야구 좋아하세요?" 그렇게 상대에게 처음 말을 건낸 게 아빠였는지 엄마였는지. 두 분의 기억은 이제 흐릿하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고 했다.
야구 얘기를 시작으로 물꼬를 튼 두 사람의 대화가 떠듬떠듬 맥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한 떼의 사람들이 '와!'하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에 엄마아빠가 텔레비전을 쳐다 본 그 순간, MBC청룡의 타자였던 이종도 선수가 사력을 다해 달리는 중이었고 흥분한 캐스터는 '개막전 첫 경기 만루홈런'을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잘 들어온 공이 타자의 배트에 기분 좋게 맞는 소리와 함께 예쁜 포물선를 그리며 날아가는 리플레이 화면을 보며 아빠와 엄마는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마주보며 만세를 부르고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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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프로야구의 첫 막이 올랐고, 기가 막힌 개막전 첫 경기 사상 첫 만루홈런이 터졌고, 스물 일곱의 아빠와 스물 셋의 엄마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그 날, 36년 전의 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