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룸' 속에서 깨달은 직장생활 직급의 위력
첫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자취를 시작해서 놀러 갔다. 이전 회사가 있던 지역을 오랜만에 가는 거라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출근길 지나왔던 다리, 퇴근길 울면서 걸었던 하천 옆 산책로까지. 아무 감정 없이 지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언니네 집에 도착해서 손수 언니가 만든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 한결 편해 보이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순간 ‘퇴사 괜히 했다.’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시 돌아갈 수도, 마음도 없는 것을.
“저는 직장에선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변했는지, 같은 사무실 사람들은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나온 내 한마디에 언니가 감명을 받은 듯했다.
다 지난 일, 다시 꺼내보자면 나는 부서의 서무라는 직무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자재 부서,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잡다한 잡일이 많아 버티기 힘들기로 소문난 부서였다.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법으로 현명하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평가한다.(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것에 큰 몫을 했던 것이 바로 ‘미룸’이다.
참 어이없게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만만한 직원, 꼼꼼한 직원, 또라이 직원 뭐 이런 식으로. 그 역할이 정해지면 누가 전했는지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은 일제히 그 역할에 맞춰 타인을 평가하고 대한다. 평소엔 사무실에서 소리까지 지르며 싸우시더니 이럴 땐 어쩜 그렇게 단합이 잘 되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어린, 힘든 부서의 여사원, 만만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내가 타 부서에 부탁하거나 요청한 일은 차일피일 미뤄지기 일수였다. 시스템의 오류부터 사소하게는 에어컨 고장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타 부서에서 안 해준다는 변명으로 미루다간 결국 더 큰 나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방법을 써야만 했다. 그때 쓴 나만의 방법이 바로 ‘미룸’이다.
직급이 높고 만만한 상사에게 타 부서의 협조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설명을 하고 한번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높은 직급이다. 그러면 내가 정중히, 몇 차례를 부탁해도 미뤄지던 일이 바로 해결이 된다. 여기서 오는 현타를 주의하길 바란다. 오래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냥 직급에 따라 달라지는 대우에 익숙해지는 걸 추천한다.
처음엔 ‘직급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돈만 많이 주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급이 없는 회사 생활은 모두의 발 닦개가 된 기분이 들게 했다. 아니 이리저리 치이는 들풀 같다고나 할까? 이리저리 밟혀도 꿋꿋이 이겨내야 하지만 딱히 의견을 피력하거나 불만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차피 내 선에선 해도 안될 일이라는 생각은 나를 고여있게 만들었다. 아마 승진만 되었어도 내 퇴사는 좀 더 먼 미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생각했다면 직급전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나에겐 이런 성취감이 무시 못하게 중요했고, 그 성취감을 회사에서 얻지 못해 퇴사를 했다. 혹시나 나와 같이 회사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지만 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퇴근 후 취미에서든, 어떤 관계에서든, 어디에서라도 그 성취감을 찾아 느끼길 바란다. 칭찬받는 것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보너스나 성과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 덕분에 이번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 고생했어.'라는 한마디에 씻은 듯이 피로가 풀리는, 어쩌면 멍청한 나란 사람을 상사들은 왜 그렇게 못 다루셨는지 모를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 않았던 쉽지 않은 첫 사회생활이었다. 연차 사용부터 업무 보고체계까지, 그저 눈치껏 해내야만 하는 사회생활에서 참 많이 울고 상처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언젠가 당신의 앞에 다가올지 모른다. 다가 올 순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다면 덜 상처 받지 않고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어렵다면 물어물어 돌아가도 된다.
단 하나, 직장 생활에 지쳐 자신을 자책 말길 바란다. 당신의 퇴근길이 평화롭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