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과 쇼핑
H와 같이 산다는 걸 평소에 일부러 말하고 다니진 않는다. 절대 말하지 않는 대상도 있다. 각자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안주거리로 삼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나에게 없을 일이라고 받아들인 줄 알았지만, 아직도 불쑥 “결혼은 정말 안 할 거니?”라고 말하는 엄마의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 결혼을 해야지!” 내 가족도 잘 못 챙기고 사는데 남의 가족까지 내 인생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그리고 설사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닐 테니까. 다음은 ‘애를 낳아야지!’라는 말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얼마 전 친구가 갑자기 “언젠가 애를 낳을 생각은 있어?”라고 물어서 1초 만에 “아니, 나 책임 질 자신 없어서 고양이도 못 키우는데?”라고 대답했다. 가끔 생각은 한다. 내가 H와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알면, 엄마가 내가 집에 혼자 콕 박혀서 외로울까 봐 걱정하는 일이 사라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 스칠 뿐, 엄마 마음의 평온보다는 지금 내 생활의 평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에 역시 말하지 않기로 한다.
집에 초대할 수 있는 사이의 친구들에겐 물론 이야기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친구나 배우자, 어떤 형태로든 동거인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뭘 해 먹는지, 자주 싸우는지, 체중이 늘진 않았는지, (조심스레) 생활비는 어떻게 쓰는지를 궁금해했다. 혼자 사는 친구들은 둘이 사는 게 즐거워 보인다며, 혼자 살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 좋은지를 궁금해했고, 가끔 ‘이 넓은 침대에서 팔 벌리고 자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때 빼고는 혼자 사는 나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듯 우리도 바쁠 땐 사 먹기도 하고 배달도 시킨다. 망원시장 쪽으로 가면 고로케, 핫바, 탕수육, 김밥, 만두, 떡볶이, 피자, 통닭 등 쉽게 사 올 게 많기도 하다. 그래도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경우가 훨씬 많다. H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땐 바로 만든 음식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라 우리 집 냉장고엔 식재료는 있지만 밑반찬은 없다. 최근의 집밥 메뉴는 다음과 같다. 월남쌈, 된장찌개와 달걀말이, 햄채소볶음과 애호박전, 대하구이와 볶음밥, 닭볶음탕, 삼겹살과 비빔국수... H가 요리해서 같이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 한 끼에 평균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점심, 저녁 두 끼를 다 집에서 먹는 날이면 메뉴 고민까지 더해져,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게 별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H는 그래도 맛있게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서 요리를 하게 된다고.
혼자였으면 귀찮아서 건너뛰었을 끼니, 혼자였으면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건너뛰었을 끼니, 혼자였으면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건너뛰었을 끼니 등을 모두 챙기게 된 관계로 체중이 늘었다. 혼자 살 땐 절반은 버리게 될까 봐 망설이던 간식이나 과일을 자주 사 먹게 된 것도 분명 한몫했을 거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살았기에 각자의 생활 방식 또한 단단했다. 많이 싸우며 교집합을 늘려가고 있고, 여전히 많이 싸운다. 최근에 뭐 때문에 싸웠냐고 물어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집 계약은 내 이름으로 했다. 보증금을 내가 냈기에. 내가 생각해보기도 전에 H가 먼저 생활비를 조금 더 내겠다고 했다. 인터넷 등 자기 이름으로 신청되어 있는 것도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로 했다. 카드가 귀여워서 만들었지만 쓰지 않던 카카오 뱅크를 생활비 통장으로 쓰기로 했다. 모임통장 기능 덕분에 둘 다 입출금 내역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좋다. 식재료와 생필품, 배달 음식, 그리고 둘이서 함께 밥을 먹는 등 데이트 비용까지 모두 우리의 생활비 영역이다. 가끔은 생활비로 식물이나 둘 다 좋아하는 음반, 책 등을 사기도 한다.
같이 살면서 개별 지출이 줄었다. 월세 부담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쇼핑이 줄었다. 생활비로 자잘한 걸 사면서 욕구가 충족되기도 했고, 예전엔 ‘마음에 들면 바로 결제!’하고 말았지만, 결제 전에 서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생각할 리 없는 ‘잠시 잊은 것 같은데 너에겐 이미 비슷한 디자인과 길이의 검은색 스커트가 몇 개나 있단다. 그리고 새로운 옷이 온다고 해도 걸어둘 빈 옷걸이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니?, 잠시 잊은 것 같은데 너에겐 보라색 스니커즈가 이미 있단다. 그리고 이미 신발장 꽉 차서 신발 겹쳐 넣은 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잖니?’ 같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생긴 거다. 가끔 어디 둘 지 생각도 안 하고 합심해서 지르는 물건(식물과 만화책이 특히 많이 늘었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확실히 쇼핑이 많이 줄었다. 그렇게 아낀 돈은 여행 가서 맛있는 걸 마음껏 먹는 데 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말하든 크게 개의치 않을 거다. 다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또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여기에 부정적인 말이나 어떤 강요로 괜한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도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대상엔 변함이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