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Nov 05. 2019

같이 살면서 달라진 것

체중과 쇼핑

H와 같이 산다는 걸 평소에 일부러 말하고 다니진 않는다. 절대 말하지 않는 대상도 있다. 각자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안주거리로 삼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나에게 없을 일이라고 받아들인 줄 알았지만, 아직도 불쑥 “결혼은 정말 안 할 거니?”라고 말하는 엄마의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 결혼을 해야지!” 내 가족도 잘 못 챙기고 사는데 남의 가족까지 내 인생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그리고 설사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닐 테니까. 다음은 ‘애를 낳아야지!’라는 말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얼마 전 친구가 갑자기 “언젠가 애를 낳을 생각은 있어?”라고 물어서 1초 만에 “아니, 나 책임 질 자신 없어서 고양이도 못 키우는데?”라고 대답했다. 가끔 생각은 한다. 내가 H와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알면, 엄마가 내가 집에 혼자 콕 박혀서 외로울까 봐 걱정하는 일이 사라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 스칠 뿐, 엄마 마음의 평온보다는 지금 내 생활의 평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에 역시 말하지 않기로 한다.

집에 초대할 수 있는 사이의 친구들에겐 물론 이야기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친구나 배우자, 어떤 형태로든 동거인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뭘 해 먹는지, 자주 싸우는지, 체중이 늘진 않았는지, (조심스레) 생활비는 어떻게 쓰는지를 궁금해했다. 혼자 사는 친구들은 둘이 사는 게 즐거워 보인다며, 혼자 살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 좋은지를 궁금해했고, 가끔 ‘이 넓은 침대에서 팔 벌리고 자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때 빼고는 혼자 사는 나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듯 우리도 바쁠 땐 사 먹기도 하고 배달도 시킨다. 망원시장 쪽으로 가면 고로케, 핫바, 탕수육, 김밥, 만두, 떡볶이, 피자, 통닭 등 쉽게 사 올 게 많기도 하다. 그래도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경우가 훨씬 많다. H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땐 바로 만든 음식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라 우리 집 냉장고엔 식재료는 있지만 밑반찬은 없다. 최근의 집밥 메뉴는 다음과 같다. 월남쌈, 된장찌개와 달걀말이, 햄채소볶음과 애호박전, 대하구이와 볶음밥, 닭볶음탕, 삼겹살과 비빔국수... H가 요리해서 같이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 한 끼에 평균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점심, 저녁 두 끼를 다 집에서 먹는 날이면 메뉴 고민까지 더해져,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게 별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H는 그래도 맛있게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서 요리를 하게 된다고.  

혼자였으면 귀찮아서 건너뛰었을 끼니, 혼자였으면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건너뛰었을 끼니, 혼자였으면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건너뛰었을 끼니 등을 모두 챙기게 된 관계로 체중이 늘었다. 혼자 살 땐 절반은 버리게 될까 봐 망설이던 간식이나 과일을 자주 사 먹게 된 것도 분명 한몫했을 거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살았기에 각자의 생활 방식 또한 단단했다. 많이 싸우며 교집합을 늘려가고 있고, 여전히 많이 싸운다. 최근에 뭐 때문에 싸웠냐고 물어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집 계약은 내 이름으로 했다. 보증금을 내가 냈기에. 내가 생각해보기도 전에 H가 먼저 생활비를 조금 더 내겠다고 했다. 인터넷 등 자기 이름으로 신청되어 있는 것도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로 했다. 카드가 귀여워서 만들었지만 쓰지 않던 카카오 뱅크를 생활비 통장으로 쓰기로 했다. 모임통장 기능 덕분에 둘 다 입출금 내역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좋다. 식재료와 생필품, 배달 음식, 그리고 둘이서 함께 밥을 먹는 등 데이트 비용까지 모두 우리의 생활비 영역이다. 가끔은 생활비로 식물이나 둘 다 좋아하는 음반, 책 등을 사기도 한다.

같이 살면서 개별 지출이 줄었다. 월세 부담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쇼핑이 줄었다. 생활비로 자잘한 걸 사면서 욕구가 충족되기도 했고, 예전엔 ‘마음에 들면 바로 결제!’하고 말았지만, 결제 전에 서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생각할 리 없는 ‘잠시 잊은 것 같은데 너에겐 이미 비슷한 디자인과 길이의 검은색 스커트가 몇 개나 있단다. 그리고 새로운 옷이 온다고 해도 걸어둘 빈 옷걸이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니?, 잠시 잊은 것 같은데 너에겐 보라색 스니커즈가 이미 있단다. 그리고 이미 신발장 꽉 차서 신발 겹쳐 넣은 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잖니?’ 같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생긴 거다. 가끔 어디 둘 지 생각도 안 하고 합심해서 지르는 물건(식물과 만화책이 특히 많이 늘었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확실히 쇼핑이 많이 줄었다. 그렇게 아낀 돈은 여행 가서 맛있는 걸 마음껏 먹는 데 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말하든 크게 개의치 않을 거다. 다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또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여기에 부정적인 말이나 어떤 강요로 괜한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도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대상엔 변함이 없을 거다.

이전 13화 싸움의 목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