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싸우고 화해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켜.” 혼자 사는 동안 TV를 마주 보며 밥을 먹어온 우리는 지금도 그 풍경과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밥 먹을 때 주로 보는 건 먹는 방송이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H가 좋아해서 시즌 1을 여러 번 봤고, 최근 시작된 시즌 2도 꼬박꼬박 챙겨 보고 있다. 문제는 음식을 나르는 그의 말이 ‘켜줘나 틀어줘나 보자’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밥 먹기 전이라 참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역시 안 되겠다 싶은 나는 말을 하고야 만다. “왜 말을 그렇게 해?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뭐야!” 30분쯤 부엌에서 시간을 보낸 후, 콩나물국이며 달걀말이를 부지런히 거실로 나르던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언제 명령했다고 그래? 나 이거 하고 있으니까 틀어달라는 말이잖아.” 몇 마디를 더한 후에야 우리는 앞으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볼까? 또는 보자!’라고 말하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고 TV 앞에서 숟가락을 들었다.
이틀에 한 번쯤은 ‘나 삐쳤어! 또는 나 서운해! 또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는 말을 한 명이 내뱉는다. 몇 시간만 지나도 ‘나 아까 화나지 않았어? 왜 그랬지?’라고 할 정도로 둘 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뭐 때문에 그랬는지 기억도 못 하지만. 몇 달에 한 번쯤 한 명을 거실에 남겨둔 채 다른 한 명이 방문을 닫고 침실로 들어가 버릴 때도 있는데, 이 역시 왜 그랬는지는 금방 까먹어버린다. 화가 난다고 해도 누군가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다. 집에선 늘 잠옷 차림이기에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작은 방에 들어가 옷을 골라 입고 나와 신발장에 있는 신발을 꺼내 신고 나가는 상황은 나중에 놀려먹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각자의 집에 살며 연애를 할 때보단 확실히 싸우는 횟수가 늘었지만, 화해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상대방이 내 말에 기분 나쁜 내색을 하기도 전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버릴 때도 있다. 그리고 화해는 ‘미안해’라는 말로 끝나기보단, ‘앞으로 이렇게 하도록 노력하자’는 약속으로 끝날 때가 많아졌다. 단체 생활에 규칙이 있듯이, 둘 사이에도 글이나 말로 구체화하지 않아도 많은 규칙들이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은 우리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해야 편안한지를 하나하나 배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각자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땐 방해하지 않기, 커피 내릴 땐 마실 거냐고 꼭 물어보기, 나중에 일어난 사람이 침대 정리하고 나오기. 우리가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싸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말하고, 싸우고, 화해한다. 조금이라도 달라질 걸 기대하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화해할 것이다. 싸움의 목적이 부딪혀 깨지는 것에 있지 않고, 서로를 또 자신을 알아가며 이 생활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