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내 안엔 소비 요정이 산다. H와 함께 살면서 활약이 줄어들긴 했지만, 잠시 지난 몇 년 간의 나를 되돌아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보이는 첫 번째 문이 내 방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엔 그 방문 앞에 쌓인 상자들을 몇 번에 나눠 챙겨 들어간다. 해외에서 배송을 받는 건 회사로 시킨다. 도착할 때가 됐다 싶으면 기사님이 올 때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내 이름이 불리기 전에 후다닥 달려가 혹시라도 누가 "뭐 샀어요?" 물어보기 전에 상자를 챙긴다. 그 상자들엔 옷이며 신발이며 바이닐이며 책이며 내 기분을 채워주기 위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유일하게 기다리지 않는 상자는 예기치 않게 도착하는 것이다.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엄마가 보낸 물건이다. 냉장고에서 또 뭘 버려야 이걸 넣을 수 있으려나, 이번엔 누구한테 나눠줘야 하려나, 이건 모셔만 두겠네 같은 생각이 드는 것들이다. 엄마의 메모엔 ‘밥 먹을 때 부지런히 먹고 남으면 찌개 끓여 먹어’라고 적혀있지만, 집에서 밥을 안 먹는데 부지런히 먹긴 뭘 먹어.
성격 나쁜 딸이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화를 꾹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택배 받았어. 그런데 다음엔 이렇게 많이 보내지 마.” 고맙다는 말이 없어서 그런지 돌아오는 엄마의 목소리도 부드럽지만은 않다. “그게 뭐가 많다고 그래.” 더 이상 해 봤자 날 선 말만 계속 오고 갈 테니 일단 알았다고 하고 끊는다.
엄마와 같이 살았던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이제 비슷하다. 1년에 두 번 명절 때 하루 자고 오는 것, 그 중간에 한 번씩 집에 가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1년 중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유독 회사에서 바쁠 때만 골라서 전화하는 것 같아서 '업무 시간이야'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퇴근하고 약속이라도 있는 날은 내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엄마가 잠드는 시간보다 늦으니 통화하기 쉽지 않다. 언젠가부터 한 달에 한 번쯤 별 일 없는지, 살아는 있는지 확인하는 것 정도가 우리 의사소통의 전부가 됐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매정하냐고, 못 됐냐고 말하겠지만,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지가 언젠데 열 살짜리 딸 노릇은 못하겠다. 십 년이 넘게 입어본 적이 없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고맙다’고 하며 받을 수도 없고, 집에서 밥을 먹거나 도시락을 싸다니는 것도 아닌데 산더미처럼 오는 쌀, 김치, 밑반찬, 과일을 ‘고맙다’고 하며 받는 건 나는 못하겠다. 옷도 알아서 잘 사 입고, 밥도 알아서 잘 사 먹는단 말이에요!
나도 안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라는 걸. 좋은 걸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서 그런다는 걸. 하지만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말도 좀 들어주면 좋겠다. 지역 맛집 음식을 배송하는 데가 있어서 몇 번 보냈더니 엄마도 “시장 봐서 해먹을 테니까 그냥 돈으로 보내면 좋겠어.”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하고 있잖아. 아니면 내 취향이 전혀 아닌 선물을 받은 순간처럼 억지로 웃으며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엄마의 따뜻한 마음은 차곡차곡 물건을 상자에 가득 담으며 임무를 다했으니, 그 마음만 고이 받고 싸움이 될 게 뻔한 통화 따윈 건너뛰고 죄책감 없이 버려도 되는 걸까?
십 년이 좀 넘어서야 노련함이 생겼다. 엄마가 택배를 보내기 전에 선수를 치는 거다. 김치도 쌀도 남아있다고. (물론 그걸 아직도 다 안 먹고 뭐했냐는 잔소리를 한참 들어야 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면 서운하다는 말 들을 게 뻔하니 혹시 고구마 캤으면 그거 10개만 보내달라고. (50개는 도착한다.) 옷 같은 건 보내지 말고 집에 두면 갔을 때 챙기겠다고 한다. (집에 있는 동안 엄마 보는 앞에서 입고 깜빡한 척 두고 온다. “다음에 가서 챙길게!”) 아, 내가 노련해진 것과는 별개로 방법이 하나 또 있었다. 나에게는 조카이자 엄마에게는 손자인 존재가 생기며 애정과 관심을 그에게 쏟느라 나를 잊을 때가 많아진 것이다. (오빠, 새언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 사람과 어제 본 것처럼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와 ‘세상에 내가 이런 걸 좋아할 줄 알았다니’ 생각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가족도 그런 게 아닐까. 얼마 전에 오빠가 아이패드를 사줬는데 핑크색이라 H가 보더니 “오빠가 너를 참 모르네.”라고 했으니까. (검은색 케이스를 주문했다.) 가족이라도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차곡차곡 모은 용돈을 내밀며 “돈이 좀 모자란데… 시디플레이어 갖고 싶어.”라며 엄마에게 부탁하는 딸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지만, 지금의 나와 엄마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엄마에게 내가 그때에 멈춰있지 않다는 걸 한참 전에 알려줬어야 한다. 내가 엄마에게 지금의 내 생활이 어떤지, 요즘엔 뭘 좋아하는지 좀 더 말했더라면, 엄마가 그런 나를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했더라면, 지난 십 년 동안 노련해지기 위한 내 노력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옆에 있는 H와 내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