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Oct 07. 2019

망원동에 살지만 핫플은 가지 않습니다

이사 온 지 이제 1년

작년 어느 주말


손바닥만 한 간판에 가게 이름이 적혀있다. 음식과 무슨 상관인진 모르겠지만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가게 이름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지나갈 때마다 계단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운이 좋다. 대기 손님이 없다.


벽을 따라 놓인 테이블 숫자는 (망원동에 있는 가게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데, 나무로 된 커다란 바도 있다. 그 안에서 흰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요리를 하고, ‘나는 지금 무척 지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 얼굴을 한 두 사람이 계산을 하고 음식을 나른다.


무난하게 오므라이스와 돈가스를 골랐다. 사람들로 가득한 가게를 잠시 둘러본다. 옆 테이블에 앉은 한 명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다른 한 명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찰칵’ 소리의 주인공이다. 옆 테이블에 음식이 도착했다. 직원이 칼을 들자, “잠깐만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오므라이스 계란이 반으로 갈라진다. ‘띵’ 소리와 함께 영상 촬영이 끝나고 다시 ‘찰칵’ 소리가 이어진다. 밥을 먹으러 온 건지, 취재라도 나온 건지 묻고 싶다. 사진 찍고 싶은 마음,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이해하지만 내 앞에 앉은 H의 말보다 크게 들리는 찰칵 소리 공격에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다. 스쳤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인연이라지만, 잠시나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도대체 어디 간 걸까? 결국 H 이마에도 주름이 잡혔다. “저러다 밥 다 식겠다. 근데 저 셀카 안에 우리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럼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야.”


아까부터 나는 서빙하는 직원의 움직임과 시계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택시 타야 될까 봐.” 자리에 앉은 지 30분이 넘었다. 안 기다려도 돼서 들어온 건데, 이렇게 기다려야 할 줄이야. H에게 혼자 오므라이스랑 돈가스 다 먹으라고 말하려는데, 다행히 우리 테이블에도 음식이 도착했다. 접시를 내려놓고 가만히 서 있는 직원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화면 말고 내 눈으로 보면 충분하다고요’라고 속으로 말하는 게 전해지긴 했는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오므라이스 계란이 반으로 갈라졌다. 다급하게 식사를 하고 후다닥 가게를 나서며 계단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너무 배고픈 상태가 아니길 1초 정도 기원한 후 택시 앱을 켰다.


망원동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지났다


주말이면 줄을 서는 가게들이 줄 지어 있는 망원동에 살게 된 후, 밥은 집에서 먹는다. “나가서 먹을까?”하면 한참 고민하느라 못 나가기 때문이다. 데이트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이면, 금방 몇 군데가 떠오르지만 항상 파스타와 샌드위치와 동남아 음식을 먹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인기는 많지만 한 번 먹어봤음 됐다 싶은 곳이나(가끔은 한 번 먹은 돈도 아깝다),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게를 장악해 동네 차림으로 가기엔 눈치가 보이는 곳이나(우리가 가게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서), 길을 막고 서 있는 대기 손님들 때문에 지날 때마다 문을 벌컥 열고 “예약제로 좀 바꾸세요!”라고 외치고 싶은 곳은 금방 생각나는데.


‘망원동 좋은 데 많잖아. 내가 그리로 갈게’라는 말을 듣는 날엔 폭풍 검색을 시작한다. 이 기회에 새로운 데 한 번 가보나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동안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과 글에 여러 번 속았던 걸 기억해내고 결국 스스로 또는 동네 친구들이 검증이 끝난 곳 중 한 군데를 약속 장소로 고른다.  


망원동에 이사 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좋아하는 곳은 내가 아무리 인스타그램에 자랑을 해도 줄을 서는 일은 안 생길 것 같은 흔한 동네 가게이거나, 긴 시간 머무르지 않고 포장해 올 수 있는 곳이다. 자장면이 4천 원이고 배달은 하지 않지만 항상 손님이 많은 중국집, 흔한 외관인데 ‘비건’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김밥집, 두 마리에 1만 1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의 통닭집, 다음날 데워 먹어도 맛있는데 저렴하기까지 해서 항상 두 판씩 사게 되는 피자집, 냄비를 들고 가야 포장해올 수 있는 육개장집, 포장이 가능한 훌륭한 맛의 디저트 가게, 그리고 사장님과 공간이 닮은 작은 가게들... 이 동네가 ‘뜨는’ 동네가 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왔거나, ‘뜨는’ 동네가 되는데 역할은 했지만 동네 주민이 놀러 오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를 찾기 힘든 곳이다.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만한 비주얼이 아니거나, 정숙한 가게 분위기에 자연스레 손님들도 조심스러워지거나, 내용물이 훌륭해 포장하는 동안 잠깐 붐비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대화가 끊임없는 셔터 소리나 가게 전체를 장악하는 큰 목소리에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OOO 해주세요/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혀있으면 다들 지켜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길을 막고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누구도 위험하게 차도로 걷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비주얼보다 그곳에서 만드는 것에 대한 정성과 질, 그리고 그 공간을 경험할 사람에 대한 생각이 우선인 곳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도록, ‘인증샷 남겼으니 됐다’가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도록.


하늘이 예쁜 오늘은 동네 산책을 나가봐야겠다. 동네 친구 만나면 말해줄 곳이 하나 늘어나기를 바라며.

이전 10화 빌려 사는 집이지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