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낮은 예의의 기준은 더 이상 경험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추석은 집에 가지 않은 두 번째 명절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1년에 몇 번 없는 자리이지만, 친척들의 질문 세례를 이번만큼은 꼭 피하고 싶었다.
결혼 안 하냐, 왜 안 하냐, 뭐가 부족하다고 결혼을 안 하냐, 연봉은 얼마냐, 먹고살 만큼은 받는 거냐, 엄마한테 전화는 자주 하냐, 집은 월세냐, 대출받아서 집 사야지에 회사는 어쩌자고 그만뒀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까지 더해질 테니까.
1년에 두 번 보는 사이에 물어볼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친척이라는 이유로 예의의 기준은 한없이 낮아진다.
지난달 미리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했다. 이번 추석엔 오지 않겠다고. 왜냐는 엄마의 물음에 질문받기 싫어서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대답하면 되잖아. 회사 그만둔 건 그냥 좀 쉬려고 그렇다고 하면 그만이잖아.”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웃으면서 대답해야 하는 것, 어떤 세상의 기준에 내가 미치지 못하거나 엇나간 것처럼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스트레스인 걸.
평소의 나는 내 삶에 큰 불만이 없는데,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질문 공세를 받다 보면 ‘내가 이상한가? 뭘 잘못했나?’하며 ‘문제는 나에게 있을 것이다’라는 늪으로 빠져든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인 건 꼭 결혼이 아니어도 되고, 무엇보다 그의 가족까지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게 자신이 없어서 결혼은 하고 싶지 않고, 밀리지 않고 월세를 내고 가끔은 여행을 갈 수 있는 만큼 돈을 버는 것으로 만족하며 회사를 다녔고, 더 이상 여기서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무거운 마음 없이 그만두고 싶어서 대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삶의 방식, 행복을 느끼는 것 모두 다를 수 있는데, 누군가 보편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 싶지 않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니까.
‘명절’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 나는 명절을 즐기기 위해 나를 잘 모르고 앞으로도 잘 모를 친척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한없이 낮아지는 예의의 기준을 경험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늪으로 빠졌다가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야!’하며 간신히 기어올라오는 정신과 감정 노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내 생각을 존중하고, ‘오래 일했으니 쉬고 싶을 수 있지. 하고 싶은 일은 또 찾으면 되지’라며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웃으며 그렇게.
추석을 맞아 망원시장과 이마트와 마켓컬리에서 장을 봤다. 요리 담당인 H가 정한 메뉴는 갈비찜과 육전과 부추 샐러드. 친구를 불러 점심을 대접하고 ‘당도’의 젤라또도 포장해와서 먹었다. 추석 기분을 낸다며 넷플릭스에서 영화 ‘타짜’를 보고, 동네 산책을 나가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밤에는 구름에 반쯤 가린 달을 보며 짧은 소원도 빌었다. 마음이 다치지 않은 명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