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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Jun 23. 2022

뉴욕 미슐랭으로 출근하는 유튜버 자도르 이야기

뉴욕에서 일하는 여자들 인터뷰집: 베이킹 유튜버 자도르의 리빙룸에서.

아늑하고 따뜻한 집의 풍경을 상상할 때면 맛있고 달콤한 냄새도 덩달아 딸려온다. 방금 만들어진 빵이나 케익을 잔뜩 기대하며 코를 킁킁거리면서 한 곳에 모이는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웃고 떠들며 나누는 대화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워 살살 녹는 카스테라를 한 입 베어먹을 때 절로 나오는 감탄사들. 


자도르는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쉐이자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유튜버다. 동시에 내 친구이기도 하다. 따로 밖에서 약속을 잡기 보다는 애시당초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도 괜찮았다는 뜻이다. 모든 친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렇지. 어른이 되어서 초등학교 친구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 일종의 행운이다. 


익숙한 그녀의 집 거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둘 다 네이비 컬러의 레깅스 위에 몸에 잘 맞는 파스텔 톤의 크롭탑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보다 더 편안한 인터뷰가 있을까 생각하는 찰나에 ‘삑’ 하고 오븐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갓 구운 고소한 휘낭시에 냄새가 풍겼다. 자도르에겐 이 모든 장면이 언제나 즐거움만은 아닐 터다. 


“이제 설탕 비율을 줄여서 반죽 테스트 다시 해보고 한 번 더 구워야 돼요.” 


(*친구이기 때문에 존댓말을 하지는 않지만 인터뷰이기에 순화되고 정중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이 스치듯 풍겨오는 냄새. 그녀에겐 며칠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성취해낸 결과물이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계속해서 맛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글자에서 글, 무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나와 밀가루 알갱이에서 케익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그녀는 어떤 점에서 잘 통했다. 



새로운 도전에는 무엇이 함께 오는가


박도

금융회사에서 5년 넘게 근무하다가 베이킹에 빠지게 되셨다죠? (어색)


자도르

퇴근 후 취미로 시작했던 베이킹이 직업이 된지도 4년이 훌쩍 지났어요. 


박도 

베이커리가 아니라 베이킹 유튜버라, 지금은 많이 성행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을 것 같아요. 


'푸쉭'


인터뷰 중에 또 다시 오븐 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뷰는 중단되었고 시식이 시작되었다. “음, 고소하고 맛있다!” 그녀는 반죽틀에 반죽을, 또 다시 채우고 있었다. 나는 휘낭시에라는 것을 처음으로 맛보고 이미 4개째 먹으며 물었다. 



박도 

이미 충분히 맛있는데 더 구우시게요? 


자도르 

한 번 잘 되어도 몇 번 더 해볼 때마다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지 만이 안심하고 유튜브 촬영을 할 수 있거든요. 


박도

‘유튜브나 해볼까?’ 그런 말들 많이 하잖아요. 쉬워 보이고 안하면 손해인 것만 같고. 어땠어요?


자도르

제가 유튜브로 돈을 번다고 하면 소위 ‘꿀 빤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실제로 시작하는 사람은 정말 드문 것 같아요.



어떤 선택에 따른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감, 그로 인해 포기하고 감내해야 할 것들, 실패에 대한 부담감, 크게 마음 먹는 용기. 



그런 것들은 감안하지 않고 그저 좋은 결과만 보게 되니까요. 제가 회사에 다니면서 베이킹 유튜브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나도 유튜브나 할까?”하고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고 전혀 행동을 하지는 않아요. 


박도

노력 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시작하기만 하면 자기는 잘 될 것처럼, 쉽게 쉽게 말하죠?



좋겠다. 회사다닐 때보다 일 적게 하고 돈 많이 벌잖아

자도르

제가 어떤 도전을 한다고 할 때, 막상 위험부담이 따르는 결정을 하고 제가 그 일에 착수할 때 응원보다는 우려와 반대가 많았어요. 


멀쩡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튜브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회사에 다니면서 나카무라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학비를 천만원 넘게 내고 다닐 때도 다들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왜 그렇게 학비가 비싸냐”, “그냥 독학해라”, “그 돈이면 다른 거에 투자하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치 제가 또라이인 것 처럼요. 그래서 그때는 ‘내가 세상물정 모르고 돈을 허투루 쓰나?’라고 생각했어요. 


박도

퇴사할 땐 더 심했겠네요. 


자도르 

유튜브가 잘되면서는 유튜브 왜 했냐던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고요. 마치 유튜브하는 것을 응원하고 지지했다는 듯이, 퇴사를 말렸어요. “그냥 지금처럼 유튜브랑 회사를 병행하면 되잖아”라고 조언하더라고요. 처음에 제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는 “좋을 거 같다! 해봐!”라고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만약에 잘 안되면 


박도/ 자도르

(동시에) “거봐~ 내가 뭐랬어~” 이러지 (웃음)



그렇게 뉴욕에서. 



박도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고 한국에서의 내 세상이 너무 좁았던 걸 수도 있는데, 솔직히 뉴욕에 온 후로 내가 나로서 자유롭게 숨쉬고 살아도 된다는 걸 많이 느껴요. 내가 하고자 한다면 그냥 하면 되는 거죠. 여기서는. 


자도르 

세계 각지에서 뉴욕에 온 친구들을 만나보면 우선 기존에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삶을 새로 꾸린 거잖아요. 그 자체가 어느 정도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도

그쵸. 우리나라처럼 집을 사서 소유해야 된다라는 개념보다는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 렌트비 잘 내면서 일하고 즐겁게 사는 게 모토인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 정말 우리 삶에 정답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하고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자도르

회사원일 때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졌어요. 회사 밖이 있는 줄도 몰랐고 밖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유튜브 시작했고, 퇴사를 했고, 뉴욕에 왔잖아요. 모든 게 다 도전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게 저만의 답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맨해튼에서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베이킹 스쿨을 다니기로 결심하기 까지, 저는 조금씩 제 자신이 발전해가고 있다고 느껴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생각이 정말 달라졌어요.


박도

그 얘기도 좀 해주세요. 남들이 다 말릴 때 비싼 학비 주고 베이킹 스쿨 가라고 등 떠민 사람, 바로 저라고요. 


자도르 

하하. 네. (단답) 


박도 

도전해도 괜찮다는 것, 다시 시작해도 별 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거 큰 위로잖아요. 


자도르

용감해져요. 사실 회사에 다닐 때 파리로 베이킹 배우러 유학도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엄두를 못 냈어요. 알아보지도 못했죠. 지금은 정말로 내가 원하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돈, 그게 다 내 경험을 위한 거니까 두려울 게 뭐 있겠나, 이런 생각을 해요. 


“직장을 다닐 때는 안 보이죠. 회사 안 다니면 큰일날 것 같고 잠깐이라도 안정적인 수입 끊기면 죽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큰일나지 않더라고요”  



유튜브 구독자 63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이 되기 까지



박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꿈을 좇아서 계속 뭔가를 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자도르 

저는 손으로 만드는 거랑 새로운 걸 먹어보는 걸 좋아해서 회사에 다니면서 베이킹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베이킹을 시작하고 2014년에 인스타그램에 베이킹 사진을 올렸었어요. 그때 사진을 보면 진짜 허접하다.. 싶어요. 사진 실력도 좋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베이킹 초보자니까요. 


그때는 베이킹을 진짜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은 해도, ‘나는 절대로 내가 꿈꾸는 레벨까지 못 올라갈 것 같다’라는 절망과 좌절의 시기를 보냈어요. 


왜, 인스타그램에 엄청 잘 해보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도 남들만큼 한다고 했는데 왜 이것밖에 못할까? 내가 직업으로 하고 싶어도 이 정도로는 그럴 수 없잖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회사만 다니다가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닐까?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노력한다고 될까?’ 그런 시간들이 되게 많았어요.



박도 

와 정말요? 제가 아는 베이커 중에 (단 한 명이지만) 제일 실력이 좋으신데도 극한의 고통과 시련의 시기가 있었군요. 어떻게 극복했어요? 토탈 7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기 까지의 과정이 정말 궁금하네요. 


자도르 

견디고 버텼어요.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어. 언젠가는 내가 더 잘하게 될 거야.


그런 생각을 꾸준히 하면서 계속해서 베이킹을 했어요.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니까 나도 모르는 새에 어느 순간 산 중턱에 올라온 것처럼 산 아래 풍경이 쫙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도

갑자기 산신령?  


자도르

진짜 신기해요. 뭐야 왜 길 없어? 이러면서도 계속 올라가다 보니까 저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별 거 아니었구나.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다 보면 조금씩 계속해서 늘 수 밖에 없다는 거. 그게 딱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나를 믿는 수밖에 없구나, 했어요.


박도

잘 되고 나서 그렇게 느낀 거예요? 


자도르 

‘나도 딱 이 사람만큼만 만들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 결과물이 더 좋다는 걸 발견했어요. 아마 유튜브를 시작하고 구독자 1만명이 됐을 때 느낀 것 같아요.


박도

그럼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해줬기 때문이었을까요? 구독자가 늘지 않았어도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자도르

디저트는 나를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먹어줬을 때 그 가치가 생기는 것 같아요. 단순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타인이 사서 먹어주고 맛있다고 인정해줘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구독자들 덕분에 느껴졌던 거죠. 그전에는 100개 1,000개 아무리 올려도 봐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점차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내 자신을 믿게 된 거예요. 


박도

타인의 인정만으로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사랑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요. 저는 요즘 타인의 인정보다는 제 스스로가 저를 받아들이고 격려해주면서 제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자도르 

복합적이긴 해요. 좋아요 수에 100프로 내 감정이나 실력이  좌지우지되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아무리 해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던 걸 어느 순간 내 손으로 깔끔하게 해냈을 때 그 성취감과 희열이 장난 아니에요. 


타르트를 처음에 만들 땐 갈라지고 터지고 못생기게 되거든요. 맛만 좋으면 되지, 하고 자기 만족을 하는 단계를 지나서 신기하게도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되는 시기가 와요. 성취가 쌓일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면서 내 자신을 단단히 믿게 되는 거죠. 


박도 

그러니까 처음에 베이킹을 시작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경지에 오른 자의 희열 같은 거죠? (너무 오바하나요? 웃음)


자도르

초기에는 그저 답답함 밖에 없어요. 왜 하라는 대로 똑같이 했는데 나는 이 모양이야? 나는 왜 안돼? 이런 느낌만 가득해요. 


박도

롤모델이 중요할까요? 롤모델이 있나요?


자도르

제가 대학도 관련학과를 안 나오고 회사에 다니다가 제과 학교를 졸업했잖아요. 그러다보니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오거나 베이킹으로 진로를 바꾼 사람들을 팔로우 하면서 ‘나도 열심히 하면 그래도 몇 년 후에는 저 사람처럼 되겠다’ 힘을 얻었죠. ‘저 사람은 이걸 보완하려고 이걸 했구나’ 이걸 보고 느낀 후 ‘아, 나도 이런 게 있으면 되겠구나’ 그런 걸 생각하면서 버틴 것 같아요.


처음부터 베이킹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집에서 깨작깨작 홈베이커로 출발했다가 나중에야 베이킹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실력이 떨어진다’라는 등 업계에서 알게 모르게 그런 선입견이나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나랑 비슷한 경력으로 시작해 잘된 선배들을 보면서 용기를 냈어요. 



유튜버로 살기, 정말로 꿈의 직업일까?



박도 

솔직히 옆에서 유튜버의 삶을 보기 전까지 저도 ‘아 유튜브나 할까?’ 이런 사람 중 한 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유튜브 왜 이렇게 빡세요?


자도르 

일주일에 영상을 하나씩 4년째 올리고 있어요. 더 올리면 좋겠지만 욕심내지 않고 딱, 꾸준히 그렇게만 하고 있어요. 촬영이랑 편집을 다 하면 3일이 꼬박 걸리고, 저는 베이킹 유튜버니까 레시피를 테스트 해야하거든요. 그게 또 2-3일 정도 걸려요. 


유튜버라고 하면 뭔가 자유롭고 화려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저는 방에 쳐박혀서 베이킹 하면서 혼자 만들고 먹어보고 하는 시간이 많아요. 한 번 만들고 먹어보고 수정해서 만들고 먹어보고. 굽고 식히고 하는 시간까지 해서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죠.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시간상 여유가 있진 않아요. 


박도

유튜브 수입은 어떤가요?


자도르

유튜브는 수입이 들쭉날쭉해요. 월급이라고 하기엔 편차가 큰 편이죠. 이제는 통장을 잘 보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 달에 얼마 들어왔지, 하고 보면 실망할 때도 있으니까요.


조회수 수익보다 광고나 협찬 수익이 중요할 수 있는데, 베이킹 분야가 아닌 패션 등 다른 분야의 유튜버들은 구독자가 3만 명만 돼도 광고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베이킹은 광고가 많이는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아요.


박도

근데 왜 그렇게 재료도 많이 사고 열심히 하나요? 적당히 돈이 들어오는 만큼만 하면 안되는 걸까요? (당연히 안될 것 같긴 한데..) 


자도르

유튜브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나의 포트폴리오를 쌓는다, 나의 업보를 쌓는다, 그런 개념으로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많게는 수십 번 테스트해서 개발한 레시피를 유튜브에 공짜로 푸는 거거든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카페나 베이커리에서 레시피로 쓰시고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계시고요.


구독자가 62만 명이나 되니까 이 레시피를 나만의 비밀로 해서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긴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지금 당장은 큰 이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베풀면서 신뢰를 쌓으면 나중에 다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도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자도르 

베이킹 하는 할머니? (웃음) 평생 베이킹 하면서 살고 싶어요. 유튜브에 베이킹 레시피를 올리는 것, 베이킹 강의를 하는 것,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를 만드는 것 등 그 형태는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뉴욕에 있는 만큼 뉴욕의 디저트, 뉴욕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식재료 등 최대한 많이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작은 목표이기도 하고요. 




인터뷰를 마치며. 


게으른 인터뷰어에게 주어진 이득이라면 인터뷰를 할 때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이 다르니 그 간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인터뷰를 할 때보다 확실히 더 많이 성장했다. 그 사이에 맨해튼 베이킹 스쿨 ICE를 졸업했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목표도 이루었다. 그러면서도 매주 유튜브에 업로드 할 레시피를 개발하고 그 레시피를 테스트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구독자들과의 약속,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지켜낸다. 


너무 쉽기 때문에 모두가 간과하는 원칙 - 가령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하기, 성공을 위해 매일매일 연습하고 노력하기 - 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인터뷰가 좋은 이유는 타인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c/JadoreRecipe/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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