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금요일 칼퇴 후 떠나는 제주도 여행은 직장인의 흔한 취미라지만 비행기값이 동남아행 만큼 오른다는 단점이 있다. 현지씨와 박종은 직장인 부대로 가득한 김포공항에서 7시 정각에 만났다. 며칠 자린고비로 살아야 하긴 해도 그럴싸한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두 사람은 서귀포에서 가장 핫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게스트하우스도 나이 제한이 있다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진 탓이었다.
가로등이 많이 없어서일까 유독 까만 제주의 밤, 김포공항에서 예약한 렌터카를 탔다.
“게스트하우스 도착하기 전에 옷 갈아입어야 하지 않나?”
현지씨는 남자 만나는데 진심이었다. 박종이 최대 속도로 달린 탓에 해볼 새도 없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버렸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불금, 제주에서의 치맥파티가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지씨의 마지막 연애는 3년 전, 주부를 위한 월간 잡지에서 알고 지낸 사진작가 철주였다. 철주는 현지 씨보다 다섯 살이 많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고 그렇다고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박종은 그를 비극적인 사람이라고 놀렸지만 현지씨는 그의 비극과 우울이 담긴 상업적인 사진들을 사랑했다. 순전히 잡지에 담길 글이라고 불리기 창피한 꼭지를 쓰는 자신에 비해 그는 적어도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서울에 전셋집 구할 돈도, 번듯한 직업도, 그렇다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닌 30대 중반의 철주와의 결혼은 모두가 뜯어말렸다. 현실 감각이 현저히 떨어지는 철주 자신조차도 사회가 가난한 30대 중반 싱글남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인지하고 있었다. 현지씨는 그게 다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연희동 공방에서 실버 커플링을 만들어서 철주에게 건넸다. 원룸 월세 40만 원 정도는 둘이서 평생 낼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는 둘만의 결혼을 하자고 말했다. 그게 철주에게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큰 충격이었나 보다. 철주는 현지씨에게 A4용지 10장 분량의 편지를 남긴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3개월 방문비자로 미국에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현지씨의 자존감은 그때부터 쭉 떨어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후에도 드물게 몇 명에게 소극적인 대시를 받긴 했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린 전남자친구의 존재를 지우기엔 미약했다.
“야. 왼쪽 대각선 존잘.”
양념치킨 닭다리를 선점해도 될까 고민하던 현지씨는 즉각 왼쪽 대각선을 바라보았다. 누군지 단 번에 찾을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자신의 주제를 안다는 것이다. 현지씨는 입술에 잠깐 힘을 줬다가 푼 후 닭다리를 입에 넣었다. 닭다리 발골을 시작하려는 찰나 ‘존잘’이 ‘몸짱’ 친구와 현지씨의 시야로 가까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도착하셨어요?”
현지씨와 수혁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