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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Oct 27. 2024

#9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

소설 연재

현지씨는 퇴근 후 은아선배, 김과장과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두 사람의 5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의심 안 받으려고 나한테 밥 사준다고 한 거면, 님들 진짜 나쁘다.”


현지가 불륜을 개그 소재로 사용할 정도로 세 사람은 가까워졌다. 경찰이 잠복수사하듯 둘의 환심을 사서 사건을 파헤친다는 목적은 온 데 간 데 없는 듯 현지씨는 처음 마시는 프랑스산 피노노아 레드와인 맛에 눈이 1cm 커졌고 세 사람은 그 와인을 보틀로 주문해 벌써 세 병째 들이키고 있었다. 사석에서 나누는 반말모드로 인해 회사에서 불쑥불쑥 반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아니, 김과장. 근데 애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진짜 두 사람 그만둘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잖아. 그러다 애들 초등학교 가겠다. 애들이 알면 상처받아! 나 그랬다고!”


그때 첫 번째 메인 코스 요리가 나왔다. 다시마 버터에 튀기듯 푹 익힌 아스파라거스와 반투명과 아이보리빛 사이로 구운 농어구이였다. 칼로 썰 필요 없이 포크에 착 달라붙는 한 입 크기의 농어는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없어졌다. 


은아 선배는 농어를 먹고 칼로 아스파라거스를 썰면서 김과장이 뭐라고 답할지 관심 없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은아는 알아.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뭐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네가 좀 알려줘 봐.”


은아 선배는 아스파라거스가 식도로 넘어가지 않아 와인잔을 들어 남아 있던 와인을 한 번에 들이켰다. 미슐랭 레스토랑답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숙련된 웨이터가 단숨에 다가와서 피노노아를 따랐다. 


김과장이 여자친구 미정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려는 날, 미정은 선명한 빨간 두 줄이 그려진 임신테스트기를 지퍼백에 담아 왔다. 해맑게 지퍼백을 흔들던 미정은 정말로 이별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김과장은 그날의 카페를 가끔 떠올렸다. 모든 여자에게 있는 촉이 미정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별임을 알면서도 잡고 싶었을까.


“뭘 잡아. 사정한 건 당신이잖아.” 


“오빠 콘돔 안 했어?”


현지씨와 은아 선배는 한 마음으로 김과장을 비난했다.

김과장은 대꾸 없이 와인을 원샷했다. 이번에도 웨이터는 김과장의 빈 잔에 피노노아를 가득 채웠다. 마지막 메인코스인 셰프가 직접 짜냈다는 들기름에 버무린 메밀국수와 간장과 바질로 만든 특제소스에 절여 숯에 구운 이베리코 살치살이 화려한 플레이팅에 담겨 나왔다. 


“걔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했어. 낳고 싶으면 낳고, 그전에 식을 올리고 싶으면 올리고, 낳기 싫으면 말고, 그래도 식은 하고 싶으면 하고.”


현지씨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한 가지 음식만 한 입에 넣는 게 좋다는 규칙을 맹신했지만 어차피 공짜로 먹는 미슐랭이기에 들기름 메밀국수 위에 이베리코 살치살 한 점을 올려 한 입에 넣었다. 두 개의 맛이 38선을 경계로 현지씨의 입을 반반 씩 지배했다. 그때 은아 선배가 말했다. “그 대신에 나랑 헤어졌지.” 


현지씨는 음식 평론을 중단하고 은아 선배를 쳐다보았다. 맛있었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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