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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Oct 27. 2024

#8 잊고 있던 가정사

소설 연재

37세 김과장은 능력도 있고 성격도 좋아서 회사에서도 차기 임원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봤자 주간현재경제라는 죽어가는 매체 안에서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가늠하지 못한다. 어쩌면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지도 모른다. 인생이 작고 못난 회색 건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땐 이미 손 쓰기엔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현지씨는 휴대폰 배경화면도 두 아이 사진인 김과장이 거의 5년 동안이나 은아 선배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아빠가 바람을 폈을 때 아빠는 몇 살이었을까?' 하는 곳까지 생각이 닿아버렸다. 현지씨 아빠 정수씨는 현지씨의 미술 선생과 바람이 나서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지씨 엄마 순정씨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사실을 잊지 못한다.


“그럴거면 이혼을 하지 왜 그러고 살아?”


고1이던 현지씨는 비논리적인 부부싸움보다는 이혼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믿었다. 순정씨는 "너희들 대학은 가야지"라는 그보다 더 진부할 수 없는 대사로 정수씨를 용서했다. 용서라는 것이 옆에 두고 과거의 잘못을 계속 들쳐내서 두드려 패도 된다는 의미라면 말이다. 정수씨만이 순정씨의 용서라는 정의를 따르는 듯 늘 고개를 숙였다. 


현지씨는 미술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얇디 얇은 입술, 붉은 여드름 자국 때문에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66사이즈의 20대 후반의 여자. 또래의 남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어려워 40대 유부남의 달콤한 계략에 속아 넘어갔을까? 둘은 진짜 사랑이었을까? 아빠는 왜 돌아왔을까?


현지씨의 상상은 엉뚱하게도 박종에 대한 충성심으로 마무리 되었는데, 박종이 만에 하나라도 불륜을 한다면 그건 이유가 있을 터이니 이해하기로 그때 다짐했다. 정수씨의 불륜이 발각된 후 1년이 지나서였다. 


'만약 박종이 유부남을 만났을 경우엔, 반드시 유부남의 와이프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사랑하지 않은지 오래된 상태일 것. 단순히 혼인 상태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반드시 두 사람이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결혼 상태인가를 우선적으로 보고자 함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부분). 


또한 3년 이상 섹스리스 상태, 인간적이고 의미있는 대화도 전혀 나누지 않는 관계에서 박종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이해하기로 함. 반대의 상황도 허용함. 박종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 남자 혹은 여자와 만남을 가질 경우 (박종의 커밍아웃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나는 박종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것임을 맹세함.' 


현지씨가 박종의 미래의(?) 불륜 가능성에 대한 지지선언문을 읊을 때 박종은 현지씨의 머리를 툭 쳤다.


"야, 현지야 너 아저씨 때문에 불륜학으로 박사따려고 하냐?"


"우리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불륜이지. 이해받을 수 없어."


"네. 다음, 불륜학 박사님. 아주 이해심이 마더테레사 수녀님을 넘어서네? 남자 보면 환장하는 베프에게 레즈비언 가능성까지 열어주고. 편견 존나 없네?"


"난 그냥 네가 무슨 짓을 한다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거 진짜 사랑이다. 임마."


현지씨에게 배신과 이해의 영역은 결국은 자신의 신념과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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