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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07. 2021

아이와 함께 부모도 업그레이드된다.

함께 성장하는 우리

 아이가 생애 첫 실연을 겪는 중이다. 얼마 전만 해도 같은 반 남자 아이랑 사귀는 것 까진 아니지만 삼귀는 중(요즘 애들은 썸 타는 걸 저렇게 말한단다.)이라고 해서 아빠 마음을 찢어놓았는데 오늘은 집에 돌아와 아빠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품에 안긴다.


 오늘은 그 아이와 처음으로 둘이서만 만나 놀이터에서 놀기로 한 날이었다. 중간에 전화했을 때만 해도 잘 놀고 있다고 했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아이는 그 남자아이가 이제 싫어졌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그 아이가 받을 상처 때문에 너무 마음이 무거워 부담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던 거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그 남자아이가 우리 딸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아직 어린 우리 딸은 그 아이가 표현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부담스러워 오히려 마음이 닫힌 모양이다. 이제 겨우 10살이 된 아이 이성에게 호기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되고 또 그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복잡함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경험의 폭이 너무 좁은 듯하다. 


 아이들은 이렇게 갑자기 큰다. 부모에게 천천히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 된 발음으로 단어를 내뱉어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고 그러다 조금만 있으면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지도 못한 어른스러운 문장을 말해서 헛웃음을 짓게 한다. 아이의 키를 재어 놓은 벽의 금은 잠깐 잊고 있던 사이에 그 전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어 갱신하고 엄마 아빠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던 아이가 어느새 친구가 더 좋다며 해가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며 엄마 아빠가 찾으러 갈 때까지 집에 돌아오질 않는다.


 이번에도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같은 반 아이가 꼬깃꼬깃 접은 껌종이에 고백을 했다고 할 때만 해도 마냥 애기들이라 생각하며 귀여웠는데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며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마냥 낯설다. 꼼군은 그 아이를 만날 기대로 폴짝폴짝 놀이터로 뛰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그런데 게다가 그 첫 데이트에 부담스럽다며 이제 그냥 친구로 남고 싶은데 어떡하냐며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니 쓰나미 몰려오듯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나를 에워싼다.


 아이가 이렇게 커다란 인생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나도 같이 새로운 엄마 애플리케이션을 장착하고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중이다. 언제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아이에게 맞춰 나도 그에 걸맞은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새 버전의 내가 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지속적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과 허심탄회한 많은 대화가 필수일 테니 아이와 자꾸만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아이가 그 남자아이와 더 이상 삼귀지 않게 된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안심이 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난 아직 구식 버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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