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Jun 09. 2021

수요일엔 떡볶이를

마음의 빚을 청산할 때까지

 오늘은 수요일. 우리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포장마차가 아파트에 오는 날이다. 이렇게 손꼽아 기다릴 정도가 되었으니 분명 포장마차를 운영하시는 분들과 꽤 친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난 그 포장마차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


 한 달 전쯤이던가 떡볶이를 사러 간 날, 손님도 없고 한가한 틈을 타 친근하게 말을 붙였더랬다.

"떡볶이 소스 직접 만드시는 거죠? 너무 맛있어서 우리 아이 참 좋아해요."

주인아주머니는 사 먹는 소스는 맛이 별로 없다며 직접 만드는데 맛있다고 하시니 다행이라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난 순대까지 사서 차곡차곡 넣어주신 검은 봉지를 들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식탁 위에 봉지를 올려두고 손을 씻고 오니 그새 순대 포장을 뜯어서 엄마가 하나 맛보고 계신다. 그런데 엄마는 "왜 순대만 사 왔니?"

"엥? 무슨 소리야? 떡볶이도 샀는데?"

"순대만 있던데~"


 갑자기 머리가 띵~ 무슨 영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두 가지.

내가 어딘가에 흘렸거나 아니면 떡볶이 집에서 깜박 잊고 순대만 넣어줬거나...


 난 헐레벌떡 떡볶이를 찾으러 순대를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시 가면 떡볶이를 안 넣어줬다며 기다리고 계실까?' 아니면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 온갖 나쁜 생각과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다시 찾아가니 그분들은 전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상하다며 선뜻 떡볶이를 새로 내어주신다. 20년간 떡볶이 장사를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이걸 받는 게 맞나? 어쩌지' 고민하다 찝찝한 마음으로 받아 들고 집에 들어오니 날 쳐다보는 엄마의 민망한 표정... 아... 정말 울고 싶다.


 떡볶이 봉지가 식탁의자에 미끄러져 떨어져 있는 걸 못 보셨단다. 난 급기야 "엄마 때문에 정말 미쳐!" 라며 불같이 화를 3000원짜리 떡볶이를 갈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용기 내어 친근하게 대화까지 나눴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인지... 두말없이 새 음식을 내어준 그분들에게 너무 죄송했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새로 받은 떡볶이 값을 시겠다며 나가시고 난 입맛이  떨어졌다. '왜 한번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너무나 평화롭게 순대를 드시던 엄마의 표정에 깜박 속은 것이 일차적 이유지만 내 손으로 들고 오고도 스스로를 못 믿다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주인 부부는 웃으며 봉지가 좀 미끄러워 그럴 수 있다며 돈을 안 받겠다고 하셨단다. 그래도 한사코 값을 치르고 올라오신 엄마는 오해가 풀렸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는데 난 마음이 좀처럼 편해지지가 않는다.


 사실 엄마에게 화가 났다기 보단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내 손으로 받아와 놓고도 처음 머리에 든 생각은 그분들이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소박하게, 게다가 음식에 대한 소신을 지키며 꾸준히 일하시는 그분들을 잠시나마 의심했다는 사실날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매주 수요일이면 꼼군이 떡볶이 심부름을 나간다.  차마 그분들 얼굴을 볼 수 없어 사과하는 마음으로 매주 잊지 않고 그렇게떡볶이를 사 먹는다. 아마도 한동안은 그 포장마차 곁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그저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단골손님으로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금처럼 매주 수요일 점심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부모도 업그레이드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