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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10. 2021

국뽕의 힘

한국은 이제 프리미엄이 되었다.

 6월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썸머 프로그램으로 바쁜 시기다. 안 그래도 전공과목 최종 과제와 읽어야 할 논문들로 시간이 모자란데 공짜라는 얘기에 덥석 3주짜리 AWS 프로그램을 신청해버렸다.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 관한 프로그램인데 IT 쪽 언어를 거의 모르는 내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시작도 전에 자신이 없다. 그 와중에 매주 해내야 하는 숙제들은 점점 쌓이고 시험까지 엎친데 덮쳐 정말 24시간이 모자르다. 


 휴직으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며 어쩌면 약간은 시간 때움용으로 시작한 석사인데 막상 시작하니 영국 석사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하다 보니 이놈의 성격 어디 가겠는가. 성적을 잘 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더불어 배움의 즐거움이 참 크다는 것도 매일매일 깨달아 간다. 30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수업을 듣다 보니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도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내게도 Samantha라는 친한 친구가 하나 생겼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Samantha는 멕시코 시티 출신이다. BTS의 열렬한 팬인 그녀는 내게 채팅을 보낼 때 항상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쓴다. 언제든 먼저 도움을 주려고 하는 착한 성품의 그녀는 이번 최종 과제 준비를 하며 내게 브레인스토밍을 제안했다. 사실 나는 브레인스토밍 보다도 그녀 얼굴을 처음으로 직접 보고 화상 통화를 할 생각을 하니 엄청 설렌다. 시카고와 한국의 시차가 너무 커서 그녀가 제안한 저녁 8시는 시카고에선 오전 6시다. 한국시간으로 너무 늦지 않도록 나를 배려한 것이 분명하다. 


 "안녕!"

화면에 비친 그녀는 방금 일어난 듯 부스스하지만 역시나 꽤 앳된 얼굴이다. 나이는 모르지만 못 해도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외국인 친구를 사귄다는 건 이래서 좋다. 내 나이를 잊고 정말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과제 얘기 조금, 한국어 얘기 많이 그리고 교수님 뒷담화도 조금... 30분가량 수다를 마치고 다음 통화를 기약했다. 


 매번 '라떼는 말이야'처럼 예전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이렇게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이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선 박지성 선수가 없었다면 아마도 한국을 설명하는 것이 참 어려웠을 거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뜸 South? North?라고 묻는 사람은 그나마 좀 나은 거였다. 중국에 속한 나라냐는 둥. 중국말을 쓰냐 아니면 일본어를 쓰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말이 있다고 하면 무척이나 놀라던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엄청나게 애국자가 된 양 한국어의 우수성을 떠듬거리며 설명하기도 여러 번. 그나마 축구팬들이 많은 나라인지라 박지성 선수 덕을 많이 보았다. 그가 멋지게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해 주고 있었고(사실 그 이외에는 한국을 떠올릴 만한 브랜드가 전무했다.) 박지성 선수의 나라에서 온 나도 덩달아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3년 전 마지막으로 영국 출장을 갔을 때였던가... 런던 피카딜리서커스에 한식당을 냈다는 친구에게 다녀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한식에 대한 열풍으로 그의 사업은 급속도로 번창하고 있었고 런던 내에 여러 개 지점을 오픈하며 당당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신기해하던 내게 피카딜리서커스의 대형 전광판에 뜬 BTS와 한국의 각종 대기업들의 광고가 동시에 보였다. 그리고 그 거리 한복판의 만남의 광장인 큐피드 석상 앞에선 흑인 아이들이 모여 K-pop춤을 추고 있었다! 

    

런던 한복판 전광판에 뜬 BTS 


  한국의 위상이 드높아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외국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난 10년 전 같은 자리에서 중국의 사람 수에 밀리고 일본의 돈에 밀리며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뼈저리게 느껴보지 않았는가. 너무 기분이 좋아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애국심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이런 걸 요즘 말로 국뽕 맞았다고 한다지?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수업을 들으면서도 한국에서 왔다면 호의적인 반응이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현재 나랑 같은 수업을 듣는 같은 과 학생들 중엔 한국 학생은 내가 유일하니 당분간은 한국이라는 이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프리미엄을 누려야겠다. 그리고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제발 졸업식만은 직접 참석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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