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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11. 2021

내가 호르몬 때문에 변할 사람 같소?

고지식했던 그 아이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나왔는데 창밖이 벌써 캄캄해졌다. 무작정 차를 끌고 어디든 가고 싶어 나온 참이다. 하지만 딱히  곳이 없으니 어디 멀리 가지 못하고 결국 가까운 카페를 찾아 오늘 끝내고 싶던 책을 한 권 마저 읽는다.


 '그렇지... 내가 할 수 있는 일탈이란 고작 이런 거지...'


  책 내용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에어컨 바람에 따뜻했던 차는 고작 30분 만에 냉차가 되었다. 더는 차가워진 음료를 마시고 싶지 않아 그저 카페 안에 울려 퍼지는 팝뮤직에 발을 까딱거리며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어릴 때 엄만 날 보고 조선시대 태어난 아이 같다고 놀렸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못해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꼭 옛날 옛적 조선시대에나 살았을 법한 아이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셨다. 한 번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어머니, 연지는 정말 고지식해서 제가 농담으로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와야 한다고 하면 정말 꾀 안 부리고 걸어올 것 같아요"라고 하셨단다. 그 당시 꽤 변두리에 있던 초등학교와 우리 집은 버스로도 다섯 정거장은 넘는 거리였으니 어린아이가 걷기에는 너무 다.


 그냥 난 그런 아이였다. 규율을 어기거나 틀을 깨거나 혹은 잔머리를 굴려 남에게 시선을 끄는 일 따위는 죽어도 하지 못할 그런 조용하고 조금은 앞뒤가 꽉 막힌 아이였다. 그 성격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조금이라도 정석대로 하지 못할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격이 이렇다 보니 에겐 엄청 쉬워 보이는 일도 내겐 어려울 때가 많다. 리고 남에게 아쉬운 말을 하느니 '그냥 내가 손해보고 말지. 그냥 내가 하고 말지. 그냥 내가 겪고 말지. 그냥 내가 참고 말지'  때가 많다. 가 좀 참아서 다른 이를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혹은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백이면 백 그 편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런데 문제는 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할 것만 같은 날이 온다는 것이다. 오늘처럼.

 

 어떤 사람은 이런 성격을 가리켜 하녀근성이라 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낮은 자존감의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AB형이 원래 그렇다며 쯧쯧 혀를 다. 하지만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수많은 AB형들 싸잡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할 수는 없는 일. 혈액형과 상관없이 난 원래 이랬다. 수십 년을 살며 많이 달라졌다고, 훨씬 나아졌다고 믿어왔지만 천성적인 기질이 그렇게 쉽게 변화되거나 없어지 않다.


 어느 날 티브이에 나온 한 여배우도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특수한 집안 상황 때문에 너무 빨리 철이 들어 버린 까닭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나도 그래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장녀로 태어나 딱히 어리광 부리며 자라지 못했고 항상 의젓해야 된다는 의식 속에 자랐다. 해외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탓에 집을 비우시는 일이 잦던 아버지를 대신해 혼자인 엄마 옆에서 항상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셨던 걸까. 엄마는 어린 내게 많이 의지하셨고 속 얘기를 하실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난 더욱더 무엇이든 알아서 했고 손이 가지 않게 자랐다. 엄마 말을 빌면 어릴 때부터 콧물 한번 흘리고 다니지 않았다며 기특하다 하셨다. 그 흔한 중2병, 사춘기도 없이 나를 최대한 억누르며 있는 듯 없는 듯 보낸 나의 10대. 어쩌면 아이 때 아이답게 마음껏 응석 부리지 못하고 자란 것이 결국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도 해소되지 못한 채 나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가끔씩 오늘처럼 그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허나 문제는 이젠 그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러니 주기적으로 이런 감정의 기복을 감당해야 할 때마다 술을 마실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늦은 시간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불편하게 할 마음도 먹지 못하는 나는 그저 어딘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내 안에 차오른 활화산 같은 폭발물이 자연히 되길 기다린다. 그 폭발물이 물이 되어 왈칵 쏟아져 내리면 그제야 촉즉발의 일탈 끝이 . 럴 땐 용암같 뜨거워진 조된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하다. 이때 혼자 있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에도 없는 못된 말을 하게 되고 이는 후에 나에게도 상처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만의 동굴 아 헤매게 된다.


 다 결국 갈 곳 없는 내가 찾은 곳은 돌고 돌아 이 곳, 껌벅이는 커서 앞이다. 이렇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음을 글 한 자 한 자에 잡아매면 좀 정신이 든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도 아닐 텐데 휴직으로 갑작스레 주어진 삶의 변화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바뀐 앞자리의 내 나이 때문일까. 작은 일에도 자꾸만 감정의 동요 생다. 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동요가 찾아오는 시기는 더 잦아진다.

 

 어느덧 늦은 저녁이 된 시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내가 걱정되는지 할머니와 아이가 번갈아 전화를 한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집을 나서는 내 어두운 표정을 보았을 테고 금세 돌아오지 않는 내게 "엄마 어디야? 왜 안 와? 얼른 와!" 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몇 번이고 전해 다그친다. 그 전화에 번뜩 정신이 든 나는 앞뒤 없이 감정적이 된 것이 그제야 부끄럽다. 아이까지 걱정시켰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다. 언제나처럼 그 민망한 마음을 애먼 호르몬 이라 기며 오늘의 일탈을 합리화며 말이다.


"그래, 이건 다 호르몬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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