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Jun 14. 2021

생명에는 책임이 따른다.

금지야 잘 있지...

 아이가 올해 이루고 싶은 소원을 적은 것이라며 작은 쪽지를 슬쩍 내민다. 그 리스트 중 눈에 띄는 "엄마에게 졸라서 강아지 입양하기".


 아기 때 무섭게 짖는 강아지를 보고 크게 경기를 일으킨 뒤 강아지는 항상 아이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다 친구 집에서 가끔씩 만나는 작고 귀여운 반려견을 보며 슬슬 익숙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인가부터는 초코색 작은 푸들을 한 마리 키우고 싶다며 졸라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반반이다. 외동인 아이에게 친구 같은 애완견이 있다면 정서적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내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을 못 하겠다.




 20년쯤 전 흰색 수컷 말티즈를 식구로 맞았다. 성격이 좀 유별나 여러 집을 전전하며 이쁨을 받지 못하다 3살쯤 되었을 무렵 우리 집에 오게 된 아이였다. 아는 분이 부탁을 해서 데려오긴 했는데 다른 집들에서도 못 키운 아이를 나라고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 아이는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우리 집 식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느지막이 아들이 생겼다며 금지옥엽처럼 길러야겠다고 이름을 '금지'로 지어놓고선 엄마는 금지를 정말 애지중지 기르셨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일까 그 아이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미운 짓 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애완견으로서의 본분을 다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렇게 금지와 우리 가족은 힘든 기억, 행복한 기억을 모두 공유하며 무려 15년을 함께했다. 내가 대학을 갈 때도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도 항상 금지가 옆에 있었다. 그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랑한다 말해주면 그 말을 알아듣는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내 옆을 맴돌았고 밤에는 항상 식구들 옆을 차지하고 잠을 잤다. 잠버릇은 또 뭐 그렇게 부산스러운지 코를 고는 것은 물론 빙빙 돌다 몸을 가로로 뉘어 발을 뻗고 자니 나는 항상 저 구석에 몰려 불편함에 잠을 설치기도 여러 번. 그래도 그 아이가 그렇게 세상 편안한 포즈로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이 내심 보기 좋았다. 가족이 된다는 건 원래 그렇게 완벽히 긴장을 풀어놓고 산다는 의미니까... 


 질투가 많았던 금지는 우리 딸이 태어나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가 항상 자기 대신 딸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질투가 났는지 짖을 때가 많았고 그 소리에 아이가 깰 때마다 금지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래도 한 번도 아이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금지 목덜미를 아프게 쥐고 장난을 쳐도 그저 가만히 아이 옆에 있어줬다. 그런데도 부족한 잠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선 초보 엄마였던 나는 금지가 혹시라도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되어 10여 년 만에 케이지를 만들어 금지를 그 안에 가두고 아이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된다. 어쩌면 금지는 그저 아이와 함께 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개에게 좋다는 황태를 몇 마리나 고아 먹이며 금지옥엽 키운 덕에 금지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빨 하나 빠지지 않았고 큰 병은 물론 그 흔한 관절염도 없이 쌩쌩했다. 이러다 견생 최초로 20년 넘게 사는 것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를 하던 우리는 그날이 가까워 온 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따라 식구들 옆에서 자지 않고 식탁 아래 엎드려 있던 금지는 낮부터 어딘가 좀 불편해 보였다. 새벽에 컥컥 소리를 내서 엄마는 좀 이상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에 드셨다고 한다. 덕분에 늦잠을 주무신 엄마 대신 일찍 일어나신 아빠가 심장마비로 이미 몸이 차갑게 굳어진 금지를 발견하셨다. 아무리 애를 써서 눈을 감기려고 해도 금지의 눈은 꿈쩍을 안 했고 뒤늦게 한걸음에 달려오신 엄마는 오열을 하시며 금지의 눈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거짓말처럼 스르르 눈을 감는 금지... 마치 엄마를 기다던 것 같았다. 금지 평생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 준 엄마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싶었나 보다.

 그 후유증은 크고 오래갔다. '그날 새벽 컥컥거리던 소리에 왜 한번 돌아보지 않았을까' 엄마는 원통해하셨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금지와 비슷한 개만 봐도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리고 그때부터 동네에서 만나는 온갖 동물들을 먹이시고 키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 핑계로 금지를 조금이라도 미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이 후회되어 한동안 많이도 울었다. 그 아이가 가족이 되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고 떠났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래서 다시 우리 집에 다른 생명을 들이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 아빠도 엄마가 또 같은 상처를 겪게 될까 봐 결사반대시다. 래서 는 같은 질문을 계속 아이에게 하는 중이다. "강아지가 오면 목욕도 시키고 밥도 주고 산책도 시킬 수 있어? 그러려면 밖에서 노는 시간도 좀 줄여야 할 텐데 괜찮겠어? 강아지는 장난감이 아니야. 살아있는 생명이고 가족이 생기는 거니 강아지가 이쁠 때나 아플 때나 언제나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해"


 꼼군은 강아지를 입양도 하기 전에 아이에게 왜 이리 겁을 주냐며 눈을 흘기고 내가 너무 오버를 하는 건가 나도 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생명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또 다른 식구를 맞이할 수 있게 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호르몬 때문에 변할 사람 같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