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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22. 2021

공부하는 엄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드디어 네 번째 모듈(과목)도 끝이 났다. 아직 성적이 나오려면 더 기다려야 하지만 앞의 세 과목도 열심히 한 만큼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이변은 없으리라 기대하는 중이다. 이렇게 네 과목으로 이루어진 두 번의 그룹(carousel)을 더 끝내면 석사 학위를 받게 된다.


 요즘 나를 보면 딱 전업 대학원생이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아침을 먹고 오전 공부를 시작한다. 예전에는 바로 도서관으로 행했었는데 어지간히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로 도서관 에서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여의치 않아 일찌감치 포기한 뒤 집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오늘 해야 할 학습량을 채우고 읽어야 할 저널을 읽고 제출해야 할 과제까지 마치면 어느새 오후 3-4시가 넘는다.


 내가 언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었지? 고3 때도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공부에 매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학부 때에도 음악을 공부했으니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보다 연습실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앎의 즐거움이란 것이 이런 구나'. 책을 읽고 여전히 가끔씩 튀어나오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메모를 하고 실전사례들을 찾아보거나 내가 했던 업무에 대입해보기도 하는 과정들이 참 흥미롭다. 이렇다 보니 엉뚱하게도 굳이 공부를 어릴 때 억지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릴 때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전부 경험할 수 있게 해 준 다음 진짜 자신이 배우고 싶은 열정이 생기는 분야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기 주도 학습'을 할 텐데 말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등수를 나눠가 왜 이걸 공부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무턱대고 국영수를 하라고 윽박지르니 나라도 재미없겠다. 아니 재미없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특별활동으로 했던 합창부다. 피아노 반주를 했었던가... 생각해보니 노래도 했다. 우리 학교가 교육방송에 출연을 하는 바람에 학교 대표로 티브에도 출연해 노래를 불렀었다. 허나 교실에서 무엇을 배웠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은 것이 없으니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건 결코 국영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만치 살아보니 대학 수학능력 시험 한 번에 인생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것도 아니다. 난 수능은 꽤 잘 보았으나 불명확한 목표의식과 입학사정에 전혀 관심 없던 고3 담임 그리고 대학은 내가 알아서 잘 갈 거라고 생각한 우리 부모님의 의도된 무관심이 합쳐져 원하던 곳 합격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돌고 돌아 날 영국 대학 편입으로 이끌었고 인생이 예상한 대로 살아지진 않지만 그렇기에 인생은 또 살아볼 만한 것 임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결과론적 합리주의가 아니냐며 힐난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어찌어찌 나름 밥 먹고 살고 있으니 그 간의 실패와 헛발질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건 내가 스스로 깨달은 이 작은 진실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할 용기가 있는 건가 하는 문제다. 주변 얘기에 혹하지 않고 남이 다 한다고 나도 따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묻는다면 소심하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는 된다. 그러나 아이가 더 커서 중학생 이 되고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네가 즐겁고 좋은 일을 찾으면 그걸로 됐다'며 흔쾌히 웃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부모들이 내가 아는 걸 몰라서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에 안착시키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우리 세대도 처음 겪어보는 변혁적인 혁명의 시기에 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일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이것이 끊임없이 배움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더 중요한 공부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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