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혼돈으로 가득 찬 현재

by 지오바니

오랜만에 맛보는 한가로움이다. 다섯 번째 과목 수업도 끝이 났고 2주짜리 알바도 무사히 마쳤다. 이제 다음 수업 시작 전까지 2주간 막간의 방학을 즐기면 된다! 홀가분한 마음에 도서관에 달려가 평소엔 시간에 쫓겨 잘 읽지 못하는 소설들을 잔뜩 빌려왔다. 수업이 진행 중일 땐 책도 전공과 관련된 마케팅, 광고 등 비즈니스 서적들만 읽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모르게 해이해지는 것 만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보고 싶던 책 들을 잔뜩 싸 짊어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늘진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릴랙스 체어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자니 없던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다. 어제는 꼼군과 백만 년 만에 극장에도 다녀왔다. 조인성 배우가 나온 신작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의 서스펜스에 시간 가는 줄 랐다. 이렇게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이 현실이라는 것에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티브이를 트니 꼭 시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마냥 비현실적인 일들이 무한정 터져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할 천 단위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장기화된 코로나로 인해 의료인력 대부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었고 40-50대 젊은 환자들의 사망 소식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해외도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은 장 이슬람 정치단체인 탈레반에 점령을 당하자 시민들이 도피를 위해 움직이는 비행기에 목숨을 걸고 매달다 무려 7명이 죽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암살된 아이티에는 진도 7이 넘는 지진이 나서 몇 천명이 죽어나가고 있고 아프리카에는 다시 에볼라가 출현했다. 유럽은 얼마 전엔 홍수에 치이고 지금은 40도가 넘는 더위와 산불과 사투 중이다.


나의 편안한 현재와 티브이 속 고통스러운 현실의 괴리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겁에 질려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지구 상 작디작은 땅덩이, 그나마도 반쪽, 그중에서 하나의 도 또 그중 하나의 시, 읍, 리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와 외부 세계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재해와 사건 사고들이 바로 직결될리는 없다. 그러나 나의 세계와 동떨어진 외부만의 고통이라 치부하기엔 그 강도와 빈도가 너무 크고 잦다.


서방세계와 동방의 문화적 특성을 비교할 때 흔히 아시아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을 가진다고 본다. 하지만 스크린 너머로 접한 전 세계적 재난 앞에 과연 우리에게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기대해야 할 미래가 올 수 있을지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게 주어진 평화로운 오늘을 감사히 잘 살아내는 것. 그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