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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ug 24. 2021

익숙해서 더 소중한 존재, 가족

 엄마랑 함께 산 지도 어언 6-7년쯤 되어간다. 워킹맘에게 아이를 맡아 줄 수 있는 친정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주말에만 다녀가는 생활을 몇 개월 지속하다 엄마 아빠를 봐도 데면데면하기만 한 아이가 눈에 밟혀  동네로 이사를 와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친정 부모님과 살림을 합친 것이 어느덧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다.


 함께 살기 시작하며 기엔 엄마의 언쟁이 잦다.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는 모든 일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던 초보 엄마와 그런 내 비위를 맞추며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는 때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 서러운 마음에 갓난아기를 둘러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아직 귀가하지 않은 꼼군을 기다리며 운 적도 다. 그 추운 겨울날 포대기 하나로 아이를 덮고 나와  있는 날 보고 놀란 꼼군에게 '당장 아이를 봐줄 다른 사람을 찾겠다'며 실행에 옮기지도 못 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내가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오랜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내 딸과 이쁜 손녀와 함께 살 생각에 내 합가 제의를 두말없이 받아들인 엄마는 그런 그림을 상상하진 않으셨을 거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엄마와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난 자꾸만 마음의 문을 닫았다. 내 나름대로는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볼 수 없기에 감수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조하며.


 그래도 그나마 참 다행이었던 건 건 엄마와 꼼군이 생각보다 잘 지냈다는 점이다. 어른들에게 편안하게 잘 대하는 꼼군은 우리 엄마 아빠를 장인 장모 대신 아버지 어머니라 불렀고 매일같이 거실 소파에 아무 거리낌 없이 누워 잠을 청함으로써 우리 부모님과 사는 것이 정말로 편하다는 것을 몸으로 명하곤 했다. 들이 불편하지 않냐며 물을 때마다 딱히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며 쿨하게 대답하곤 했는데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 우리 둘 다 알고 있기에 설사 불편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놓고 불평할 처지는 못 되었다.

 

 렇게 함께 살며 꼼군이 살갑게 아이를 돌보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걸 직접 보게 된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퇴근 때면 손녀를 위한 과자봉지가 가끔씩 손에 들렸고 어느 날은 아이 잠옷을 사 오셨는데 너무 커서 2-3년이 지난 후에야 입힐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이 없다는 가부장적인 우리네 아버지의 대표 격인 아버지가 사 온 그 잠옷은 아버지 안에 꿈틀대기 시작한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탄 같았다. 그리고 항상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의 변화가 생경하면서도 반가웠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꼼군은 난생처음 우리 집에서 제사상을 보고 아버지 옆에서 예법에 따라 술을 따르는 법을 익혔다. 처음엔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던 그가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장인 옆에서 수발을 드는 것을 보면 아들 없는 우리 집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것이 고맙고 든든하다.  


 이렇듯 서로에게 직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느덧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우리 가족. 하지만 가족에게 벌어지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은 그 익숙해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가족이 된 이들에게 으레 있어야 할 약간의 긴장이 무너지면 서로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며 쉽게 상처를 주게 된다. 코로나로 24시간을 붙어 지내며 우리 가족에게도 어김없이 그런 시간이 찾아왔다. 서로에게 감사의 말 보다 앙칼진 짜증이 먼저 치고 나와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잦아고 이젠 상대방에게서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일이 더 워 보인다.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잠시 망각하고 있는 이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독이 되는지 이 조차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다. 함께 할 시간이 천년만년 남은 것처럼 굴고 있는 어리석음에 내가 먼저 참회를 해 본다. 고작 1년도 채 안 남은 이 소중한 시간을 서로의 눈치를 보고 화를 삭이며 보내게 될까 겁이 난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서로의 존재와 희생에 감사하며 먼 훗날 이 시간이 그리워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사랑을 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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