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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ug 26. 2021

내겐 너무나 완벽한 우리 엄마

 휴직도 8개월째. 젠 한낮의 나들이가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다. 제든 맘만 먹으면 한가로운 평일 대낮의 북한강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고 마트에 가기 전 잠시 엄마와 짧은 데이트도 즐길 수 있다. 운전을 못 하시는 엄마에겐 이런 짧은 외유가 엄청 즐거운 일이다. 북한강이 눈앞에 펼쳐진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엄마의 최애 메뉴 핫초코를 사드리고 마주 앉으니 내 마음도 즐겁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게 된다. 남존여비가 극심했던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2남 1녀 중 둘째 딸. 장남한테 밀리고 예쁜 막내한테 밀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외할머니는 엄마를 미워하셨다고 한다. 내 머리로는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미워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린 마음에 다 담지 못할 상처가 되는 많은 말들이 이제 나이 70이 다 된 엄마 마음에 여전히 아물지 않고 남아 있으니 분명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큰 잘못을 하신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던 엄마는 서슬 퍼런 할머니가 너무 무서워 입 밖으로 차마 내어보지도 못하고 이불속에 숨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난 5살이 되자마자 개인 피아노 교습소에 다녔다. 딸을 갖게 되면 꼭 피아노를 가르치겠노라고 다짐을 하셨던 엄마는 내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나이가 되자마자 바로 그 결심을 실행하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딸이라는 이유로 대학에도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회사를 다니며 동생 대학 학자금을 대야 했다. 그 나머지마저 꼬박꼬박 외할머니께 생활비로 드렸는데도 좋은 소리 한번 듣지 못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여자면서 도대체 엄마에게 왜 그러셨을까.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사진으로만 뵌 할머니지만 정말 따져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그렇게 엄마에게 상처를 주신 거냐고...


 하루빨리 집을 벗어나 독립하고 싶던 엄마는 그때 운명처럼 아빠를 만났다. 결혼하자마자 그렇게 소원하던 딸 둘을 낳은 엄마는 딸이라서 겪었던 설움을 보상이라도 받듯 우리를 정말 예쁘게 키워주셨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고 학교에 갈 때도 한 번도 흐트러진 머리나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집 밖을 나간 적이 없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다면 응원해주셨고 무조건 믿어주셨다. 심지어 20대 초반, 아무런 상의 없이 가족도, 친구도, 아무 연고도 없는 영국으로 떠날 때도 엄만 '네가 가고 싶다면 다녀와, 넌 어디 있든 잘할 거야. 엄만 널 믿는다 다만 너무 힘들면 언제든 걱정 말고 돌아와' 라며 조용히 내 손에 신용카드 하나를 쥐여주셨다. 내 힘으로 살아남겠다고 떠난 유학인데 차마 엄마 카드를 쓸 수가 없어 묵혀두었다가 5년 동안 한 두 번 정말 어려울 때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엄마는 딸이라고 품속에 두고 안전하게 살기만을 바라지 않으셨던 것 같다. 딸도... 여자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믿으셨고 그 믿음을 실천에 옮겨주셨다. 나를 믿어주심으로...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딸을 가진 엄마가 된 나는 과연 엄마가 했던 것처럼 내 딸을 믿어줄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 믿음 덕에 한눈팔지 않을 수 있었고 목표한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존경하는 위인이나 사람을 적어 내라고 하면 난 언제나 우리 엄마를 써냈다. 아빠의 사업이 휘청거리며 집안이 어려울 때도 집 안의 중심을 잡고 우리를 흔들림 없이 보살피셨고 오로지 가족에게만 올인하셨던 엄마는 지금껏 우리들을 두고 친구들과 그 흔한 온천여행도 한번 다녀오신 적이 없다. 선하고 바른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 불쌍한 동물들을 그냥 못 지나치시는 엄마를 언제나 존경했다.

 어릴 때 항상 듣던 말이 '엄마를 닮았으면 좀 더 이뻤을 텐데...'라는 말이었다. 미인형 얼굴에 패션센스도 좋아 초등학교 때 우리 엄마가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연지 엄마다 우와~" 하며 난리법석을 떨곤 했다.


 "내겐 이렇듯 완벽한 우리 엄마. 엄마의 외모도 인품도 반도 못 따라가는 딸이 이제 좀 철이 들려나 봅니다. 좀 늦었지만 엄마가 할머니께 못 받았던 사랑까지 제가 다 돌려드릴게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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