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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Oct 07. 2021

내 인생의 덤

 새로 옮긴 직장으로 출퇴근에 왕복 4시간을 쏟고 있다. 해 초 휴직을 시작하며 다시는 출퇴근에 고통받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그 굳건하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난 9개월 만에 또다시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지옥에 날 내던지고 있는 중이다.


 내게 무슨 선택권이 있었다고 그리 굳게도 마음을 먹었던가. 서울 사대문 안에 살지 못하면 1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은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이었는데 내게 마치 선택권이 있었던 양 참 의기양양했었다. 그때는.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운전을 포기함으로써 차를 타는 시간을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미처 못한 학교 숙제도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그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나름 부단히도 무언가를 한다. 렇게 해서라도 출퇴근이 지옥이 아닌 나만의 자유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행복 회로 풀가동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다 보니 벌써 2주째 아침이 밝아왔다. 예고 없이 닥쳐오던 수많은 일들에 정신없던 지난 일주일은 이제 고이 접어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내일을 생각할 여유 생겼다. 물론 이러다가도 아차 싶은 순간은 당분간 계속 찾아오겠지만 이젠 혼을 빼놓지 않아도 대처할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이 회사는 이전의 조직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일단 상명하복의 문화가 약한 점조직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맡은 일과 직접적인 보고라인에 없는 사람은 아무리 직책이 높아도 시큰둥하게 대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일하기가 더 힘들다. 알아서 일하도록 독려하는 것 외에는 딱히 직급으로 누를 수도 없으니 당장은 다 함께 허허실실 잘해보자며 웃고 후에 성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나처럼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알아서 눈치껏 자신의 입지를 굳혀야 한다. 누군가 다가와 알아서 인수인계를 해주고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겠거니 기대하고 있다간 한 달 후에 책상이 빠질 확률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매몰되어 실수하지 않겠다, 빨리 적응하겠다, 내 쓸모를 당장에 증명하겠다고 덤고 싶지 않다. 러다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면 결국 내 손해이니. 이 나이에 덤으로 얻은 기회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내 마음과 정신이 다치지 않게 그렇게 몸 사려가며 일해야지.' 화르륵, 하루에도 몇 번씩 타오르는 마음에 물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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