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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Oct 15. 2021

처음엔 원래 다 그래

 쏜살같다고 밖에 표현 못 할 2주가 지났다. 오늘 상무님이 맛있는 점심을 사 주시며 그동안 어땠냐며 물으신다. "첫 주는 태풍에 휘말려 어디론가 떼굴떼굴 굴러가는 느낌이었다면 2주 차는 굴러가다 어딘가 돌부리라도 부여잡고 잠시 숨을 고르는 기분이에요"


 정말 그랬다. 특히 이번 주 초엔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냐며 사람 기를 바득바득 빨아먹는 상사 때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고생했는데 월급 한 번은 받고 그만둬야 억울하지 않으니 3개월만 버티자 눈을 꾹 감고 출근길 맨털을 붙들어 매던 것이 바로 엊그제다. 안 그래도 불안하고 걱정 많은 내 정신세계에 생전 처음 겪는 수준의 압박은 내 몸에 무형의 카페인을 들이붓는 것 같았고 결국 지난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런데 최악의 밤이 지나자 오히려 마음에 묘한 안정이 찾아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는 법.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건 출구 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더 이상은 블랙홀에서 헤매며 나를 갉아먹을 에너지가 당최 남아있지 않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하나씩 천천히 해결해 나가는 것뿐. '그렇게 했는데도 안된다면 그때 가서 포기하자' 굳게 마음먹고 주위를 휘이 둘러보니 엊그제까지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띈다.

 

 언제나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동료와 선배가 그들이다.


 9개월의 휴직 기간 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회사일이란 결국 일정한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 스트레스를 줄여줄 청량제는 바로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라는 것을.


 처음 하루 이틀은 빌딩 숲 속, 온통 유리로 되어 속이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멋진 건물에서 일하게 된 것이 내심 으쓱했었다. 하지만 그곳에 속한 사람임을 증명 사원증이 곧 개의 목줄 같음을 느끼는 데에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 목줄을 걸고 빛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빛 좋은 개살구가 바로 나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데 겉만 번지르르한 생활이 지옥이 아니고 무까.

 걸 깨달은 후부턴 일부러 점심때마다 회사 근처가 아닌 먼 곳으로 산책을 다. 그렇게라도 회사와 나를 분리시키고 숨을 고르면 그나마 숨이 좀 쉬어졌다.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다른 이를 응시할 짬이 생겼. '괜찮냐고. 잘 적응하고 있냐고. 점심은 먹었냐고. 차 한잔 하자고.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자신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고. 처음엔 원래 다 그렇지 않냐'라고 말을 걸어주는 그들이 내겐 마치 구세주 다. 리고 그들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긴장감에 바짝 말라 바스락거리던 내 마음 한켠이 물컹해다. 막 한가운데 혼자 떨어져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내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는 듯한 그들의 이 깊은 위로가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과 낯섦 그리고 처리할 새도 없이 밀려는 새로운 정보에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들의 따스한 시선에 그 충동을 붙잡아 매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처음엔 원래 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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