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Oct 20. 2021

먹고사는 것의 무게

노동열차는 오늘도 달린다.

 오늘 아침에도 기차는 달린다. 남들은 주말에 설레는 기분으로 타는 기차를 나는 아침마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견디며 가까스로 오른다. 이런 삶이 어디 나뿐이랴. 새벽같이 서울행 기차에 올랐을 고단한 심신들이 이미 기차 안을 가득 메웠다. 기차의 움직임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하릴없이 그들의 머리와 얕게 들리는 코 고는 소리는 처량하기까지 하다. 기차 한 칸 속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꿈속을 헤매는 이들만 가득한 이 고요함이 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이 고요함 속 먹고사는 문제에 진심인 치열한 이들의 삶에 어느덧 동질감을 느낀다.


 출근한 지 3주가 지나자 그제야 친구의 목소리가 그리울 짬이 났다. 그동안은 하루 종일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누더기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느라 여력이 없었고 그나마 남은 에너지는 기나긴 퇴근 여행에 바쳐야만 했다. 오랜만에 장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봇물 터진 듯 수다가 쏟아져 나온다.

 헌데 한참 동안 하소연을 쏟아 내며 내심 위로의 말을 기다리던 내게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먹고사는 게 다 그래. 누구에게든 치열한 거야."


 대기업을 다니다 육아휴직 후 돌아와 보니 책상이 빠져있었다는 그녀의 한 지인은 운 좋게도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사업이 꽤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사업을 한다는 건 모든 책임을 지는 것도 나라는 이야기. 그 부담감에 못 이겨 얼마 못가 공황장애로 죽다 살아났단다. 내 친구는 또 어떤가.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그녀의 영아 대상 사업 또한 거의 2년간 멈춰 있다. 아이가 피아노 연주회에 한번 신을 연주회용 구두를 사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그녀의 얘기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먹고 산다는 것의 무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남의 것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녀의 말에 순간 내가 지고 있는 이 괴물 같은 짐도 누구나 가진 것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나만 괴롭히는 특출 나게 악한 놈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다.

 

 모두들 나름의 방법으로 치열한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각자에게 닥친 제각기 다르게 생긴 괴물들과 매일매일 전력을 다해 한판 승부를 하며 말이다.  내 인생의 절반쯤에서 맞닥뜨린 이 놈과의 한 판은 전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굉장히 불리한 싸움이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복병까지 숨어 있어서 언제 어디서 허를 찔릴지 모른다. 몸이 아프고 힘든 상사를 만나도 이미 선택한 이 길에 우회도로는 없다. 이쯤에서 멈추어 선다는 건 고속도로 갇힌 고장 난 차가 되는 것.  

 일을 전력투구를 하며 살다 보니 20대 가난한 유학생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매일매일이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었던 그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 같던 불안한 미래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그 당시 내가 갖고 싶던 것을 가졌지만 안정적인 직장과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내가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까지 덜어주진 다. 다만 그 종류를 변화시켰을 뿐.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고개 한번 들지 못할 만큼 신없이 돌아가는 하루에 내가 세상을 사는 건지 세상이 날 떠밀어 살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삶의 현장으로 데려다 줄 노동열차는 오늘도 내일도 어김없이 이 시간에 올 것이다. 삶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 계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엔 원래 다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