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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Dec 06. 2021

우리 지금처럼만 살자

열한 번째 결혼기념일

 열한 번째 결혼기념일. 우리에게도 그날이 찾아왔다. '십 년을 넘게 산 부부가 되었구나. 드디어 우리 둘이'. 결혼기념일 날 아침, 이제 겨우 눈을 뜬 꼼군에게 '나랑 11년 동안 사느라 고생했다'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불에 덴 듯 이불을 박차고 뛰어나간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내미는 손엔 작은 립스틱이 들려있다. 나름 명품 브랜드라며 큰소리치는 그모습에 웃음이 다. '얼마나 고민하며 색을 골랐을까.'

 이렇게 소소한 선물에 기쁘고 그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남몰래 쏟았을 그의 시간이 내겐 선물보다 더 큰 감동다.


 지난 11년을 되돌아보니 함께 살아온 날들을 지지고 볶았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물론 감정이 상해 힘들었던 적도 있고 때로는 서로 언성 높였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결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그거면 됐다 싶다. 그런데 꼼군은 결혼을 후회한 적 있냐는 질문에 약간 망설인다. '뭐지... 이 싸한 기분은'




 결혼 전부터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우린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육아전쟁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맞벌이인 우리를 대신해 아이를 거의 전적으로 맡아 키워준 친정엄마가 계셨지만 밤마다 일에 치이고 돌아와 아이를 먹이고 놀리고 씻기고 재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뻔한 여염집 스토리처럼 남편이 육아를 등한시했다며 하소연하고 싶지만 우리 집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손에서 아이를 내려놓지 않던 꼼군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물론 나는 대신 요리를 하고 청소빨래 했으니 업무 분담이 잘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탓인지 아이는 커갈수록 아빠만 찾았고 내 마음속엔 서운함에서 오는 뭔지 모를 불만과 불안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처음엔 육아를 전담하는 꼼군에게 고마웠던 마음이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이와 관련된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우린 자주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화르륵 불타올라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러다 결국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폭발해버리는 날이 왔다. 그날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간 그를 기다리며 싸늘한 마음으로 아이를 재웠고 그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 슬며시 사과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잠시 결혼을 후회했었라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털어놓는다.


 다행히도 우린 지금의 우리가 너무 좋다. 그런 다툼과 갈등을 잘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라는 말을 100% 가슴으로 이해할 만큼 서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내 부모 자식보다 더 가까운 무촌이기에 꺼릴 것이 없고 숨길 것이 없으며 나 자신만큼 더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나가는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 인생은 혼자라고 하지만 그 혼자인 와중에도 문득 옆을 보았을 때 묵묵히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크나큰 위로와 안도감을 준다는 것을 그와의 결혼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지금처럼만 살자"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신혼의 설렘과 좌충우돌 적응기를 지나 이제 편안하게 서로에게 안착한 우리는 10이라는 숫자를 앞에 달고서야 비로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10년, 그 후 또 10년. 인생이 흘러가는 구비구비마다 우리의 관계도 지속해서 변화해갈 것이다. 난 10년간, 라보기만 해도 설레었던 감정이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때론 측은함으로 변한 것처럼 그다음 10년이 가져다줄 변화가 무엇일까 기대가 된다. 물론 여전히 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배의 노를 저으며 그 희로애락을 함께 겪어 낼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내 배는 외로운 돛단배 신세는 면했으니 더 큰 파도와 풍랑이 닥쳐와도 끄떡없다는 믿음으로 매일 아침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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