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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01. 2021

책 너머 저 어딘가

메타버스보다 더 생생한

 이직한 후 제대로 책 한 권을 읽지 못했다. 매주 2-3권씩 읽고 리뷰를 하던 블로그도 개점휴업 상태다. 차분히 앉아 책장을 넘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도 있지만 쉬는 때 만은 머리를 비워내버리고 싶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그 비워버린 머릿속엔 자꾸만 제주도가 떠오른다. 요새 들어 제주가 너무 멀게 느껴져서일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하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이제 제주는 닿지 못할 수억만 리 너머의 파라다이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제주의 하늘과 물빛, 오름을 오를 때 느껴지는 싱그러운 공기가 그리움을 배가시킨다.  생각을 떨쳐내 버리려 억지로 책을 펼쳐 눈앞에 들이밀어도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철자들이 미처 뇌에까지 가지 못하고 눈동자에 부딪혀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이미 읽은 페이지는 책의 절반을 향해 가는데 아직 주인공 이름조차 외우지 못했다.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아... 러시아어란...


 이렇게 눈으로 책의 텍스트만 수집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 책을 내려놓곤 핸드폰을 집어 든다. 이젠 내 친구들의 소식보다 모르는 이들의 피드와 광고로 도배가 된 SNS를 관처럼 스크롤한다. 가끔 진짜 친구의 피드를 만나게 되면 길 가다 우연히 친구와 마주친 듯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원치 않게 끝도 없이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에 금세 흥미를 잃는다.


 모든 것이 찰나가 된 세상.

줄어들다 못해 이젠 붕어보다 더 짧아진 사람들의 집중력에 의지해 그들에게 주목받으려면 일단 튀어야 한다. 알록달록 계속 바라보면 어지러색감과 자극적인 문구, 생생한 영상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그 피드들에 둘러싸여 피로함을 느끼는 건 나뿐인 건가.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친근하게, 좀 더 세련되게, 그 찰나를 거하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 점점 더 피드 밖 세상으로 망치고 싶어 진다.  수많은 찰나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내게 남는 건 눈을 거두어도 여전한 번쩍이는 불빛의 잔상과 밀려드는 정보를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피곤한 두뇌뿐. 래서 결국  둘 곳을 찾다 보면 듬고 더듬어 다시 돌아 책이다.


 밋밋해 보이지만 깊이가 있고 무채색이지만 클래식한 그리고 단출해 보여도 눈앞에 실체가 있는 책을 다시 한번 진득하니 읽어본다. 비록 현란한 매력으로 나의 시선을 잡아끌지는 못하지만 이 텍스트 너머 자리한 군가의 삶과 인생,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역사와 무궁무진한 미지의 지식세계가 날 끈덕지게 끌어당긴다. 렇게 책을 통해 책장 너머의 세계에 한참 빠져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실세계와 책 속에 한 발씩 걸치고 정신을 차려보려 하지만 이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로 책을 읽는 건 말 그대로 텍스트를 훑어 내리는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오늘 나의 퇴근 여행의 동반자, 스탈린 시대 생존했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만나며 잠깐이나마 스탈린이 지배하는 소비에트 국가 사는 나를 상상해본다. 쇼스타코비치가 소비에트 정권에 환호를 보내던 고흐를 비난하며 했던 말처럼 "공산주의 정권에 살지 않으면서 공산주의자가 되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하지만 나로선 '나의 글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대로 곡해되지 않고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는 세상에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내 글의 절반은 공산주의에 반기를 들고 천한 자본주의를 신봉한다며 반동주의자로 몰려 벌써 어디선가 처형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두려워했던 것처럼...

 오죽하면 반동분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친구의 장례식에서 그가 읇조린 말이 "난 자네가 부럽네 그려..." 였을까. 쇼스타코비치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평생을 사느니 그 지옥을 끝낸 친구가 오히려 부러웠다.

 

 책을 통해 웹이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보다 더 생생한 상상의 세계를 만났다. 그곳은 찰나의 자극적인 순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삶과 인생이 실존하는 세계다. 한참을 푹 빠져들어 쇼스타코비치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나지막이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역은 왕십리, 왕십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현실 세계로 나가는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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