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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Oct 12. 2021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추석이 지난 지가 언젠데 올해는 겨이 더디게 온다. 래도 세월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가 있어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아진 옷들을 정리하고 신발을 새로 사며 분명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하곤 한다. 밖에서 보면 시간의 갭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어느새 아이가 저렇게자랐을까. 까마득할 것만 같던 철봉에 선뜻 손을 뻗어 가볍게 매달리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몸이 아프고 나면 사는 게 별 것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쑥쑥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배설하는 것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것들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 그러니 그 덤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신경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너지를 한데 모으기 위해 요즘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유명인들도 자주 언급하던 명상의 효과를 나도 확실히 험하는 중이다. 자기 전 고작 10분간 눈을 감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숙면을 취하게 만든다. 재의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외에  어떤 일도 할 필요 없고 그 어느 다른 곳에도 있을 필요 없다는 진행자의 편안한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절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가만 보면 행복이란 게 별게 없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마음 편하고 건강한 것. 이 네 가지 조건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지만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허나 문제는 일단 이 네 가지가 충족되면 자꾸만 옆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맛있는 것으로 배를 불리는 사람들과 더 크고 더 좋은 집에서 등 따습게 사는 사람들이 편안했던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오면 균형이 잘 맞던 행복이 뒤뚱거리기 시작한다.  


 그 뒤뚱거림은 나이와 비례해 더 심해진다. 나와 친한 이들의 삶과 내 삶이 엇비슷하게 가고 있는지 자꾸만 옆을 보게 된다. 내가 너무 뒤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닌지, 나만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다른 이들은 이미 한참 전에 걸어간 그곳을 뒤늦게 나만 홀로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앞을 보지 않고 계속 옆을 보며 걷다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가까스로 잡은 행복의 균형이 깨어질 것이 한데도 나 자신보다 주변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는 삶 점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의 잣대가 외부에 있으면 행복은 점점 손안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변해간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 동안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을 걸며 스스로를 속이기도 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곳에 취업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시험을 잘 보면, 좋은 집에 살면, 좋은 차를 타면,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며 자꾸만 행복의 조건을 내걸며 행복과 나 사이에 선을 그어댔다. 누구와 협상할 것도 아니면서 그 조건을 달성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 눈앞에 있는 행복한 시간들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보내기 일쑤였다.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고생하던 시기를 지나 그새 많이 나아진 몸 상태로 보내는 나른한 휴일. 맑은 하늘 아래 아이와 함께 집 앞 공원에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이 시간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아무런 조건도 기약도 약속도 필요 없는 이 시간 기억이 더 오래도록 내 안에 머르며 행복의 순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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