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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Sep 28. 2021

내 가족을 지키는 방법

 한동안 많이 아팠다. 급체로 시작되어 장염으로 발전한 속병은 위장을 진정시키는 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소화불량으로 발전되었다. 3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며 또다시 그 지루한 싸움이 시작될까 두려워 신생아를 다루듯 부드럽고 순한 음식만 먹으며 위장을 달래길 몇 주째. 몸무게는 3킬로쯤 빠졌고 무언가를 입에 넣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예민한 사람들이 속병을 많이 안고 살듯이 나도 그런 예민한 족속들 중 하나임은 알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 상황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는 위기감이 몰려다.


 인터넷에 내 증상을 검색하면 신경성 위장 장애라는 말이 뜬다. 위내시경을 해도 나처럼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 지속적인 소화불량과 복부 불쾌감을 안고 산다면 이는 육체를 넘어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추석을 맞아 방문한 시댁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그득한 잔치음식과 고기를 보며 입맛만 다셔야 하는 상황도 이젠 신물이 난다. 아픈 날 배려해서 별도로 내어놓은 멀건 콩 비지국에 밥을 먹으며 빨리 다시 건강을 되찾겠노라 굳은 다짐을 하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울리는 카톡. '000님이 소천하시어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제목을 잘못 본 것 같아 한참을 다시 봤다. 장례식장과 일정을 알려주는 링크엔 분명 내가 알던 그 사람의 얼굴이 있다. 아직 40대인 지인의 얼굴이다. 못 만난 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영국에서 알게 된 그녀 동생과의 친분이 두터운 덕에 그녀가 가 사는 곳과 가까운 동네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산다는 얘기를 건너 듣곤 했었다. 영정사진에도 여전히 앳되 보이는 얼굴과 내가 기억하는 장난기 많고 눈웃음 가득했던 그 시절의 쾌활한 그녀의 모습이 남아있다. 갑작스러운 충격적인 소식에 내 소화불량 따위는 별 것 아닌 일이 되어 버린다. 무엇이 아직 새파랗게 젊은 그녀를 앗아간 것일까.


 오랫동안 암투병을 하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이야기에 탄식이 나온다. 벌써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암으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오늘 그곳으로 떠난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아주 잠깐 이었지만 함께 했던 기억에서 그녀는 항상 웃는 모습이다. 평소엔 조용하지만 대화할 땐 늘 쾌활하고 장난기 많던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곧 남겨진 어린 아들과 남편분을 생각하니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어린아이를 두고 세상을 등져야 하는 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나로선 상상도 못 할 큰 고통을 미루어 짐작만 해볼 뿐이다. 친언니의 부고에도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올 엄두조차 못 내는 그녀의 동생에게 연락을 해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모두가 코로나에 정신이 팔려있 이때에도 세상 한편에선 삶과 음이 반복되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이 세상에서 내 가족과 나를 지키는 방법은 결국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 몇 주간 이어진 복통으로 정신까지 나약해진 내 마음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힘겹게 운동기구에 오른다. 이 악물고 땀을 내며 '다시는 이런 나약함 앞에 무릎 꿇지 않겠다' 다짐을 한다. 이것이 나와 내 아이 그리고 소중한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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