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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Sep 23. 2021

퇴사하던 날

내 이력서에 남은 기분 좋은 한 줄.

 미리 작성해놓은 사직서를 품에 안고 사무실에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문 앞에 서 있던 대표님과 눈이 마주다. 오랜만이라며 목소리 높여 반갑게 맞아주시는 대표님. 그의 어색하기 그지없는 불필요한 수선에 사무실의 이목이 한순간 내게 집중되었다. '아뿔싸...' 조용히 찾아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직서를 내려던 내 계획은 그렇게 어그러졌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 소란이 더 번지기 전에 얼른 대표님을 이끌고 자리를 피한다. 다행히 이미 사전에 사직 의사를 전달해 놓은 터라 불필요한 설명이나 불편한 긴장감 없이 웃으며 사직서에 사인을 받는다. 반은 진심일지도 모르는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지난 6년간 이어온 인연을 마무리한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적합한 말인 것 같다. 장장 5년간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사에 한 발을 걸치고 9개월 가까이 쉬며 마음 편한 휴직자의 삶도 누렸다. 그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한 기억들 중 질을 통해 낟알과 겨를 분리시키듯 좋은 것만 남겼고 덕분에 오늘 이렇게 웃으며 마주 앉을 수 있다. 자의 반 타의 반 하게 된 휴직이 마냥 기뻤던 것도 아닌데 그 휴직이 이런 순기능을 갖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직서를 내고 이토록 유쾌하게 웃으며 떠나온 적이 있었던가? 처음 겪어보는 우호적인 이별이 얼떨떨하긴 회사 임원들도, 인사 담당자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 긍정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듯 내 앞날에 행운을 빌며 추석을 맞아 사무실 가득 쌓여있던 추석 선물세트까지 내민다. 그러자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일말의 서운함마저 눈 녹듯 사라진다. '6년 전 새로운 기회가 간절했던 내게 손을 내밀어 평생 갈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해 준 곳. 그래 그 기억만 가지고 가자'. 나도 앞으로 더 흥하시라는 덕담을 남기고 그렇게 회사와의 인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항상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의 기분 좋은 경험을 통해 끝이 아름답기 위해선 그 간의 모든 과정이 납득할 만해야 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그 간 열심히 달려온 내게 수고했다는 칭찬을 전하고 싶다. 오늘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은 지난날을 만들어 준 나 자신에게 참 고맙다.


 단 하나 쉬운 건 역시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다. 다른 팀으로 발령을 받아 어느덧 그곳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인정받고 있는 그들에게 나의 부재가 영향이 있을 리 없지만 나를 떠나보내며 아쉬움 가득한 그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오늘이 그들과의 끝이 아닌 회사 밖에서 시작될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우리를 에워싼다.

 잊지 않고 별도로 연락을 드려야 할 분들도 추려내어 감사 인사와 기회가 되면 뵙자는 여지를 전하고 그렇게 회사와 나를 잇던 선들을 하나씩 잘라 내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나 9개월의 휴직은 오늘 느껴야 할 감정들을 무디게 만들기에 충분히 길었나 보다. 이미 끝마쳐야 했어야 할 일을 드디어 하고 돌아온 듯 시원한 마음이다. 두 손 가득 낑낑 추석 선물세트를 들고 집에 들어서며 주어진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의 기양양함을 가득 담아 선물 보따리를 내려놓는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늘 해낸 은 마무리가 좋은 시작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긍정의 마음이 마구 샘솟는 것만 같다.  


내 이력서에 한 줄로 추가될 6년의 끝이 이렇게 닫혔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아쉬움, 그리움 이젠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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