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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Sep 13. 2021

좋은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인생은 짧다

 마지막으로 전철을 탔던 것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전철로 환승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릴 때에 카드로 하차 그를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누군가 앞서 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휴직 전에도 차를 가지고 다녔으니 전철이 익숙지 않은 것평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목적지 도착한다. 지난 5년간 매일 오갔던 역.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자세히 뜯어보면 분명 변한 것이 있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상점들의 조명으로 밤낮없이 반짝이는 불빛, 먹음직스러운 이국적인 음식 사진이 걸려있는 트렌디한 식당들로 가득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8개월이 아니라 바로 어제 걸었던 그 길처럼 익숙한 느낌이 밀려온다. 점심 먹고 매일 산책하던 길을 지나쳐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8개월 전 그때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코로나 때문에 차 한잔 마주 앉아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워 나란히 걸으며 안부를 묻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다시 손을 맞잡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지난 5년간 이렇게 나란히 이 길을 걸으며 얘기하곤 했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나중에 이 길을 걸으며 예전을 추억하게 되겠지?"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며 내게 무엇이 남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들이 있었다. 함께 일했던 좋은 사람들. 내 사람들. 우리가 한 회사의 구성원으로 엮여 있지 않아도 언제든 웃으며 반갑게 만날 수 있고 개인적인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다.


 나이를 먹어가며 평생 갈 좋은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단순하게는 너무 멀리 살아서, 사는 것이 바빠서, 혹은 너무나도 달라진 삶의 환경 때문에 서로 공유할 것이 없어서일 도 있다. 그중 가장 뼈아픈 경우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그들에게 중요한 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다. 나와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고 은 일이 생기면 배 아파하는 사람들. 나를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두고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 나의 솔직함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던 사람들.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들에게 내 마음 다 내어준 바보 같은 나.

 그들이 있던 페이지를 과감히 찢어내 버리고 평생 갈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이들로 다시 채워본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사람들로 둘러싼 하나의 성을 쌓는 것. 견고한 벽돌인지는 세월이 저절로 말을 해 주니 내가 해야 할 것은 혹여 모를 부서짐에 마음 다치지 않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허나 내 마음도 이전처럼 무르지만은 않다고 믿고 싶지만 막상 커다란 실망과 마음의 상처 앞에선 여전히 어쩌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라며 내 안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겪고도 여전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안 좋은 일이 내 잘못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하니 불혹에 걸맞은 튼튼한 마음을 갖추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더 이상 그들 때문에 마음 다치지 않게 오늘처럼 내 성 안에 들어온 이에게만 집중해본다. 이만치 살아보니 좋은 이들만 만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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