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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Feb 22. 2022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다

 입사한 지 두 달 되던 날. 호흡이 가빠올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직감했을 무렵,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취업정보 사이트에 이력서를 오픈했다. 그러던지 얼마 되지 않아 출근길에 도착한 메일 한통. '딩동' 하며 화면에 뜬 그 메일을 오픈하는데 이유 모를 기시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식음료 분야의 국제협회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아시아 지역 매니저를 찾고 있다며 영문 이력서를 보내줄 수 있냐는 메일을 보곤 '그래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라는 생각에 홧김에 이력서를 보내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첫 인터뷰는 미국에 있는 지역 디렉터와 인사하는 자리였다. 비록 식음료 분야 경험은 없지만 오랜 마케팅 업무와 해당 분야에서 B2B 전시회를 개최했던 경험을 높이 산다며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쳤다.


 그 후 2주가 지났다. '아마도 결과가 안 좋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포기했을 무렵 두 번째 인터뷰 요청이 왔다. 본부가 미국과 영국에 있다 보니 한국까지 3개 나라의 시차를 고려해서 늦은 밤에 화상 인터뷰가 잡혔다. HR 매니저는 미국 동부, 마케팅 부디렉터는 영국 런던, 그리고 나는 한국. 참 글로벌하다 생각하며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긴가민가 하며 별 기대는 없었다. 나름 기관에 대해 조사도 했고 지난 8개월 동안 인터뷰란 걸 지겹게 봤지만 그래도 면접이란 언제나 긴장되게 마련이다. 잔뜩 굳은 얼굴로 10분 일찍 접속을 했는데 정시가 돼도 깜깜무소식이다. 혹시 링크가 잘못되었나 싶어 화들짝 놀라 이리저리 확인했지만 분명 맞는 링크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당황해서 얼굴이 시뻘게진  앞에 홀연히 나타난 영국인 아저씨와 미국인 아줌마가 웃으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한쪽은 영국 악센트 또 한쪽은 아주 빠른 미국 동부 악센트로 질문을 퍼붓는다. 보다 너무 추상적인 질문들에 진땀을 빼며 어찌어찌 답변을 하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휴... 드디어 끝났구나.' 이력서에 있는 나의 학력, 경력들에 대한 질문은 없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신념을 묻고 가치관을 궁금해했다. 일부러 질문을 꼰다거나 압박을 해서 사람을 험하는 것이 아닌,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이를 통해 들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다. 히 그 두 사람의 거만하지 않은 태도와 차별 없는 열린 마음이 인터뷰 중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게다가 인터뷰 말미에 내 상사가 될 영국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워라벨은 아주 중요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더 바랄 것이 무언가! 이로서 두 번째 인터뷰를 마친 후 또다시 2주가 흐른다.


 2차 인터뷰를 통과한다면 마지막었을 CEO와의 인터뷰, 최종까지 올라온 나와 또 다른 후보자 때문에 뒤로 밀렸다는 안내 메일이 날아왔다. 대표 바로 아래 임원과 한번 더 인터뷰를 본 뒤 거기서 합격한 최종 한 명이 CEO와 인터뷰를 보게 된단다. 이때쯤 되자 높아진 합격 가능성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회사의 업무 여건 때문이다. 전 세계 60개국에 지사가 있는 이 기관은 코로나 이전부터 원격근무가 원칙이었다. 원격으로 근무하며 업무의 약 20%는 회의와 행사 참석을 병행해야 하는 업무여건은 다름 아닌 내가 딱 꿈꿔오던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물론 비영리기관인 만큼 현재 회사보다 적은 연봉에 만족해야 다. 한국 지사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복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 100% 원격근무뿐이다. 허나 지난 5개월간 높은 연봉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동료들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며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고 임원 중 하나와 세 번째 인터뷰를 하면서는 이 기관이 정말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당 산업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그의 편안한 태도가 인터뷰 내내 날 미소 짓게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합격 여부를 기다리던 중 어느새 가 바뀌었다. 새해 첫 주 CEO와의 최종 인터뷰를 보며 긍정적인 기대감에 들뜬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선물처럼 날아든 합격 소식! 이렇게 금은 짜릿한 성취을 만끽하는 중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원격근무는 내게 커다란 로망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께 일했던 영국인 동료 홍콩, 필리핀, 그리고 한국의 집을 막론하고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든 원격근무를 했었. 물론 그는 전문계약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처럼 일할 수만 있다면 허울만 좋은 정규직을 내려놓고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싶을 만큼 그가 부러웠다. 그러던 중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고 내가 그 수혜의 당사자가 되며 다시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시에 찾아온 흔치 않은 기회 만 같다. 물론  이직을 한다는 내게 이직 전문가라며 부러움 섞인 농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8개월 만에 이직한 지금의 회사에서 지옥 같은 6개월을 보냈기에 '이 나이에 또다시 이직이라니...' 억세게 운이 좋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회사에 내 삶을 저당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며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대가 된다.


 론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닐 터. 자유로운 근무 형태는 어느덧 많은 기업들이 내세우는 복지제도가 되었다. 리 가족에게 있어 가장 좋은 점은 굳이 서울로 이사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여의도, 한 사람은 판교로 출퇴근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중간 지점인 강남으로 사를 고려하우리 가족은 올해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마음 편히 큰 대출이 필요 없는 곳으로  계획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벌써부터 삶의 질이 높아는 것만 같다.


 물론 난 다시금 이직에 앞서 지나치게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오로지 나의 성과로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원격근무, 화상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수억 만리에 있는 동료들, 처음 발을 들여놓분야에서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일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상사에게 인신공격을 당할 일도, 누군가에게 줄을 서며 정치를 할 필요도, 얼굴도 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일도 없이, 아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면서도 여전히 일을 손에서 놓지 을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이제 나도 디지털 노마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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